20일차: Bessemer Venture Partners

흑역사를 박제해버리는 VC가 있다?

20일차: Bessemer Venture Partners

BVP Highlight

  • Bessemer Venture Partners("BVP")의 시작은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Henry Phipps는 철강왕 Andrew Carnegie와 함께 Carnegie Steel Company를 공동 창업한 인물입니다. 그는 회사를 JP 모건에 매각한 이후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기 위한 family office를 설립합니다. 그러다 1970년대에 고위험/고성장 분야에 투자하던 분야가 Bessemer Venture Partners라는 이름으로 분사되었고, 2007년 들어서는 처음으로 Phipps 가문이 아닌 외부 자본으로 첫 펀드를 조성합니다.
  • (TMI: Why Bessemer?) Carnegie Steel의 성공에 필수적인 Bessemer 공정을 발명한 Sir Henry Bessemer를 기리기 위해 선택되었습니다. 역사적 뿌리와 초기 성공의 원동력이 된 기술 혁신을 담고자 했다고 하네요.
  • AUM은 약 $20B 수준이며, 구체적인 IRR이나 DPI 등 지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IPO 145+건을 포함해 공개된 exit건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투자 성과 또한 우수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300+개의 포트폴리오 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표 포트폴리오는 Pinterest, Shopify, Twilio, Yelp, LinkedIn, PagerDuty, DocuSign, Wix, Fiverr, Toast 등이 있습니다.
  • 처음에는 미국 내 투자에 집중했으나, 2000년부터 인도, 이스라엘, 라틴 아메리카, 유럽 등지로 투자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텔아비브, 실리콘밸리, 샌프란시스코, 뉴욕, 런던, 홍콩, 보스턴, 방갈로르 8개 도시에 오피스를 두고 있습니다.

BVP의 대담한 생각들 (contrarian)

BVP는 긴 역사만큼이나 읽을거리가 풍부한 회사입니다. 홈페이지 아티클과 유튜브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리죠. 그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몇 개 꼽아 봅니다.

1) Memo & Anti-portfolio: 기록의 민족

투자 의사결정의 이유를 기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 투자했는지 또는 투자하지 않았는지 회고하는 과정에서 좋은 투자의 원칙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VC업의 특성상 우리는 높은 확률로 틀리기 마련이기에 이를 모두에게 공표하는 것은 대부분 꺼립니다. 그런데 BVP는 골 때리게도 자신들이 쓴 investment memo를 공개할 뿐 아니라, 그들이 투자하지 않았는데 대박난 회사를 "Anti-portfolio"라고 이름붙여 홈페이지에 적나라하게 게시해 두었습니다.

2) Roadmap: 기존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기

앞서 다른 VC들도 자체적인 리서치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고유한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미디어를 통해 이를 전하는 모습을 보았죠. BVP는 새로운 트렌드, 기술 및 시장 기회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Roadmap"이라는 이름의 thematic guide를 홈페이지에 게시합니다. 기본적으로 파트너가 전문 분야나 새로운 관심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3) Absence of a founder: 왕이 없는 세계의 장인들

앞서 Carnegie와 Phipps의 사진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다른 것보다도 "진짜 옛날 사람이네" 싶었습니다. 이처럼 창업가가 100년도 더 된, 이미 죽어 사라진 옛날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BVP의 파트너들은 덕분에 더 자유로운 의사결정, 기여한 만큼의 보상, 도제식 교육을 통한 주니어의 성장 등 BVP의 긍정적인 운영체계 및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생각 들여다보기 1. Memo & Anti-portfolio: 기록의 민족

예전에 국사 시간에 '조선이 얼마나 기록에 미친 나라였는지' 선생님이 재미있게 설명해 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태종이 노루를 쏘다가 말에서 떨어지고서는 "창피하니 이 사실을 기록하지 말라"고 했더니, 사관들이 그것까지도 몽땅 적어 버렸다는 그 이야기.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후대에 시사점을 남기고자 시스템으로 만들어 박아 버린 조선이라는 나라가 참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참 징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진짜 얼마나 King받았을까요?

BVP는 "이 회사에 투자하는 이유"의 정수를 담은 investment memo를 상당히 많이 공개해 두었습니다. 보통은 공개하지 않죠. 아예 CIM, Confidential Investment Memorandum이라고 박아 둡니다. 그런데 BVP는 정말 있는 그대로 공개해 버렸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이메일의 수신인과 발신인, 타이틀, 발송 날짜라는 형식까지 보존해서 누가 언제 이 글을 썼는지 그대로 드러냈을 뿐 아니라, 회사에 대한 핵심 지표 및 분석 결과와 로직까지 무엇 하나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올려둔 것이죠. 이 정도면 아무리 브랜딩 목적이라고 해도 대단합니다. VC투자를 공부하려는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개 숙여 감사할 일이죠.

BVP가 investment memo를 공개해 둔 회사들

한 술 더 떠서, BVP는 "Anti-portfolio"라는 이름으로 투자하지 않았는데 초대박나버린 회사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노루 잡다 말에서 떨어진' 기록도 남겨둔 것이죠. Memo 대비 상대적으로 간소하게 쓰여져 있기는 하지만, "어떤 파트너가 어떤 회사를 놓쳤는지" 짧지만 굵게 팩폭을 날려버립니다. (해당 파트너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일까요.) 투자 기회 놓친 회사가 유니콘을 넘어서 M7 기업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이불을 차고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인데, 그걸 떡하니 회사 홈페이지에 게시해 버리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만 공개해 봅니다.

Jeremy Levine spent a weekend at a corporate retreat in the summer of 2004 dodging persistent Harvard undergrad Eduardo Saverin’s rabid pitch. Finally, cornered in a lunch line, Jeremy delivered some sage advice, “Kid, haven’t you heard of Friendster? Move on. It’s over!”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신 분이라면 Eduardo Saverin의 이름에서 알아채셨을 이 회사는 바로바로 Facebook입니다. (제가 Jeremy Levine이라면 이 글 볼 때마다 정말...)

BVP의 그 유명한 Anti-portfolio

Memo와 anti-portfolio는 홈페이지 들어가서 몇 개만이라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생각 들여다보기 2. Roadmap: 기존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기

BVP에서 말하는 Roadmap이란, 신규 트렌드와 기술 및 시장 기회에 대한 장기적인 리서치와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적 프레임워크 또는 시장/기술 트렌드에 대한 인사이트 모음집입니다. BVP의 파트너들은 개별적인 기회가 생겼다고 "뜬금없이, 갑작스레 새로운 영역이나 테마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전에, 광범위한 기술 변화와 시장의 요구에 맞춰 중요한 테마를 선제적으로 공부하려고 하죠.

새로운 Roadmap의 개발은 특정 파트너가 주도하며, 어느 정도 인사이트가 쌓이면 해당 파트너는 오프사이트 또는 정기적인 팀 토론과 같은 내부 회의에서 연구 결과와 인사이트를 발표합니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점진적으로 충분한 공감대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BVP는 기존 관념이나 통념에 머무르지 않고 유연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성공적인 roadmap 중 하나로 평가받는 cloud roadmap

BVP의 성공적인 roadmap의 예시로 클라우드가 있습니다. BVP는 클라우드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파악함으로써 SaaS의 잠재력에 주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좋은 투자건을 집행할 수 있었죠.

BVP는 나아가 시장에 새로운 용어를 coin하고 흥행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2022년 고금리로 시장이 얼어붙으며 성장뿐 아니라 수익까지 중요해지던 시기에,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매출을 만들어내는 SaaS 비즈니스 중 "유니콘보다 더 희소하고 대단한 회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들이 말한 더 희소하고 대단한 회사를 일컫는 말은 바로 켄타우로스인데요, 기존의 $1B 기업가치를 의미하는 유니콘 중에서도 ARR이 $100M 이상인 기업을 가리키죠. 실질적으로는 기업가치가 높고 고성장할 뿐 아니라, 반복적으로 수익을 내면서 성장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오늘의 키워드] 켄타우로스(Kentauros)
말은 성장을, 사람은 현실적인 수익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Campaign: Centaur
At Bessemer, the Centaur is a business that reaches $100 million of annual recurring revenue (ARR) - the new milestone of an exceptional SaaS startup.

BVP의 파트너들은 roadmap을 잘 만들고 활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1) Problem이 아니라 Tech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고령화 문제를 예시로 생각해 봅시다. 워낙 중요한 문제니까, 이걸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역으로 찾아나서는 접근이 이상하지는 않죠. 그러나 BVP의 파트너 Kent는 반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항상 존재해 왔고, 지금까지 혁신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최신 기술 변화를 먼저 이해하고, 이걸로 기존에 존재하는 문제를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 Theory가 아닌 Real World

Kent는 이어서가장 훌륭한 roadmap들은 결국은 포트폴리오사들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투자한 포트폴리오 중, 물론 잘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던' 회사들의 성공 비결을 회고하고 추적해 보는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강력한 인사이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죠.

3) 통념이 아닌 contrarian

BVP가 UGC(User Generated Content)에 처음 투자할 때만 해도, 콘텐츠가 유저를 모으고 유저가 다시 콘텐츠를 생산하는 바이럴 루프를 통해 트래픽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컨셉이 새로웠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vertical SW에 처음 투자할 때도 작은 시장에서 거의 독점하다시피하면 아주 큰 수익을 내는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즉 점유율을 시장 크기와 맞바꿈으로서 큰 밸류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비교적 신선한 발상이었다고 하죠.

생각 들여다보기 3. Absence of a founder: 왕이 없는 세계의 장인들

예전에 모 VC 대표님께서 투자사를 이해하고 싶다면 세 가지만 물어보면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배구조, 투심구조, 인센티브 구조가 바로 그것이죠.

BVP는 어떤 회사인지 묻는 질문에, 파트너들은 "의사결정이 자유롭고, 상호 간 협력하는 문화가 갖추어져 있으며, 도제식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회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 한 명의 창업가나 확실한 오너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창업가는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던 회사는 어느덧 외부 자금을 운용하는 독립계 금융사나 다름없어지는 과정에서 굉장히 민주적인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겁니다. 누군가의 입맛을 맞출 필요도, 과도하게 설득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죠.

Henry Phipps,Jr,1839-1930,Co-founder of Carnegie Steel Co.,Philanthropist |  eBay
1930년에 세상을 떠나신 Phipps 할아버지

BVP에는 20여명의 파트너가 있고, 이들은 권한과 의무를 비슷하게 나누어 가집니다. BVP의 투심은 동일한 투표권을 갖는 모든 파트너들이 10점 만점으로 투표를 해서, 평균 5.5점이 넘으면 통과되는 구조죠. 반대하는 사람이 설령 0점을 주더라도 투자를 막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점에서 파트너 하나하나가 좀 더 새롭고 용감한 도전을 하기에 용이한 구조인 셈입니다. 그만큼 내부적으로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가 매우 잘 정착되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투자건을 강하게 밀면, 나머지는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피드백을 주되, 결국에는 대체로 좋은 점수를 주는게 일반적이라고 하죠.

파트너들은 또한 철저히 투자 성과에 기반해 인센티브를 받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쓸 수 있는 check size 또한 투자 성과에 따라서 점차 늘어난다고 하죠. 앞서 이야기한 roadmap을 잘 개발하고, 잘 설득하고, 이에 따라서 점차 투자 성과로 증명해 나간 만큼 장기적으로 인센티브가 점차 커지는 방식인 거죠.

여기까지 이해한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BVP는 "고인물 문제"가 별로 없는 회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세기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면서 계속 손이 바뀌어 왔고, 누구도 오너가 아니기에 눌러 앉아있지는 않았으며, 그렇지만 한 만큼 벌어 갈 수 있는 구조는 잘 만들어 둬서 계속 노력하고 혁신하는 미묘한 스킴을 잘 짜 둔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실제로 BVP는 파트너를 길러 내기 위해 멘토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20대에 입사해서 파트너와 붙어서 도제식으로 투자 산업과 투자 대상들에 대해서 계속 배우고, 점차 신뢰를 쌓아서 승진한 케이스들이 많다고 하네요. 이것이 작동하려면 회사가 끝없이 성장하거나 정체된 상급자들이 잘 나가 줘야 하는데, 인터뷰들을 통해 이해하기에는 잘 작동하는 듯했으니까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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