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모르는 KPOP

초동, 출고량, 수출량이 이야기 해주지 못하는 사실. 그리고 흥행 산업 프레임워크의 종말

한국인이 가장 모르는 KPOP

시장의 성장 = 기업의 가치 상승?

시장의 성장이 기업의 가치 상승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파민 터지는 시장 팽창은 기업의 매출이나 트래픽 같은 외형적 크기를 키울 수 있고, 돈으로 표현되는 기업가치는 덩달아 천정부지 치솟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로 찍힌 기업 가치가 아니라, 정말로 가치를 창출하는지(Value Creation) 그리고 포착하는지(Value Capture) 그리고 유지하는지(Value Retention)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판단을 위해 아래와 같이 질문해보는 연습을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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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회사, 기업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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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회사, 가치 있는 기업이야?

두 질문은 묘하게 비슷하게 들리면서도 굉장히 다른 대답을 내놓을 때가 많습니다. 투자나 사업에 매몰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후자의 질문은 종종 박스 밖으로 나와 본질을 생각하게끔 합니다. 사업 혹은 투자 대상을 고를때 큰 시장과 성장하는 시장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곤 하지만, 긴 시간이 걸리는 게임을 하다보면 진짜 중요한 것은 산업의 변곡점에서 어떤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고 포착하고 유지하는지를 아는 것이죠.

미국의 VC인 NfX는 기업이 창출/포착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방어 가능성(Defensibility)이 기업의 성장에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합니다

컨슈머 영역에서는 때로는 광기까지 느껴지는 수준의 파티가 벌어지다가, 썰물이 시작되면 진주 없는 조개 껍데기들은 그대로 씻겨 나가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합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서 그랬고, D2C 브랜드에서도 그랬죠. 그리고 이번에는 KPOP의 차례인 것 같습니다.

'50% 수준의 연평균 성장률' + '조 단위 시장'의 성장과 규모 콤비네이션이 끝난 지금, KPOP 산업의 진짜 가치는 어디에 담겨있을까요?

연도별 음반 출고량 (써클차트, 2024 재가공)

이 글을 읽기 전에 1편을 보고 오시면 훨씬 좋습니다만,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혼돈의 KPOP 산업, 답은 어디에 있을까?
2025년 KPOP 산업의 do-or-die 챌린지
  • KPOP은 더이상 '한국 대중 음악 기반 흥행산업'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슈퍼팬 비즈니스'로 변모하였다.
  • 유튜브, 틱톡과 같은 뉴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 대비 1) 글로벌 오디언스, 2) 개인화 알고리즘, 3) 양방향 상호작용을 가장 차별적인 특징으로 하고, 이는 곧 '글로벌 슈퍼팬'이라는 독특한 소비자를 만들어냈다.
  • 슈퍼팬 현상은 수많은 컨슈머 섹터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특히 KPOP은 개척자 BTS의 발자취를 따라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글로벌 슈퍼팬과 함께 빠르게 성장해왔다.
  • 슈퍼팬 비즈니스는 음악 비즈니스가 아니다. 매출 구조 상 현격한 차이가 있고, 기존 음악 시장의 강자들이 반드시 헤게모니를 갖는 것은 아니다.
  • 슈퍼팬 비즈니스에서는 적은 모수로도 큰 매출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한 매출 업사이드의 증가와 재무 변동성 완화의 장점이 있다.

이제 1편에서 남겨둔 키워드 중 '글로벌', 그리고 '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해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오늘날 더욱더 크리티컬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 한류 시절을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사실 한국인 입장에서는 20년 전 '한류'부터 시작된 내러티브를 들어 왔기에 글로벌이 뻔한 것처럼 들리지만 지난 몇 년간 KPOP의 글로벌화에는 산업적으로 주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냥 글로벌이 아니라 빅마켓!

첫 번째로, 글로벌은 KPOP의 본진이 되었습니다. 2023년 기준 하이브의 총매출 중 64%가 해외에서 발생하였는데, 이는 2017년 28% 수준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치입니다. JYP의 경우에도 2023년 전체 매출 중 55%가 해외 매출이고, SM은 아직 내수가 크지만 해외매출의 성장률이 더 높습니다. 굉장히 오랜 기간 글로벌은 KPOP의 서브 시장이었으나, 이제는 본진과 서브 시장이 이미 뒤집혔다는 뚜렷한 수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두 번째, 더 중요한 점은 KPOP의 소비 시장이 단순히 '한국이 아닌 곳'으로 넘어가는 것 뿐만 아니라 명백히 '큰 시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래는 써클차트에서 집계한 KPOP 수출 대상국가 Top 10의 변화입니다.

2017년에는 아시아 국가가 절반 이상이었던 것과는 달리 2023년도에는 북미 및 유럽 국가의 순위가 상승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가 차트에서 없어지고, 서구권 국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독일의 순위도 점점 올라오고 있죠.

그런데 단순히 서구권의 비중이 올라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KPOP 주요 수출국의 시장 규모가 한국보다 각기 몇 배수씩 크다는 것입니다. 2024년도 기준 국가별 음악 시장 규모 Top10은 1. 미국(34%), 2. 일본(16%), 3. 영국(8%), 4. 독일(8%), 5. 프랑스(5%), 6. 중국(미상), 7. 한국(3%) 8. 캐나다 9. 브라질 10. 호주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8개 시장이 KPOP의 주요고객이 된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10배 이상, 독일은 2~3배 큰 시장입니다. 과거의 해외 진출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업사이드가 열렸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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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명 옆에 적은 전체 음악시장 대비 국가별 추정 시장점유율은 IFPI의 2017년 데이터 기준이지만 대략적 규모 파악을 위해 참고로 기입하였습니다. 국내 음악시장도 성장하였지만, 다른 지역의 음악 시장 역시 지난 몇년간 빠르게 성장하여 점유율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IFPI, 2024

시장 규모는 Quantity x Price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빅마켓은 단순히 Quantity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KPOP의 신규 고객들은 기존 KPOP이 타겟으로 삼던 시장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Price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가장 높은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피지컬 앨범 가격을 웹사이트 서핑만 해도 드라마틱하게 느껴집니다. 아래 사진은 엔하이픈의 'Romance: Untold [Engene ver]'라는 정확히 같은 사양의 앨범을 국가별 주요 구매처에서 찾아본 결과입니다. 랜덤으로 골라보았습니다만, 다른 앨범으로 찾아보아도 유사한 추이를 보일 것입니다.

미국이 저렴해 보이는 마법

위 가격표들은 KPOP이기 때문에 특별히 높은 것은 아닙니다. 각 국가의 통상적인 피지컬 앨범의 가격에 기반하고 있을 뿐입니다. 독특한 사실이 있다면 대부분의 음악 장르에서 피지컬 앨범은 사라져가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KPOP 슈퍼팬 사이에서는 굉장히 주요한 덕질 행위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큰 시장이기에 높은 Price와 KPOP이기에 높은 Quantity가 결합될 여지가 크다는 뜻이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국내 밸류체인 내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마진율이 존재하는 시장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 과실은 누가 먹고 있는 걸까요?

공급자 지표는 그만, 글로벌 수요자 관점이 핵심

2024년 들어 전체적인 수출량이 주춤하고, 음반 출고량이 줄어들며 전체적인 KPOP 모멘텀에 대한 의심어린 시선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초점을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 관점, 즉 글로벌 슈퍼팬과 글로벌 사업자 관점으로 틀어내는 것이 시장에서 창출되는 가치를 제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전체 수출량보다 '국가별 수출량'이 중요해지고('어떤 국가로 가는가?'), 전체 출고량보다 '시장별 판매량'이('해당 국가에서 최종 소비자 시장 규모가 얼마인가?') 중요해지는 시기입니다. 기획사 입장에서 얼마나 많은 양이 출고 되었는지, 혹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양이 한국 밖으로 수출 되었는지만을 쳐다보는 것은 현재 KPOP 시장의 변화에 따라 유니크하게 생성되고 있는 부가가치를 포착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음반 밀어내기 : 성장의 탈을 쓴 무가치한 비즈니스 모델

실제로 시장은 글로벌 빅마켓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었지만, 지난 몇 년간 성장의 탈을 쓰고 국내에서 버블을 만들어낸 무가치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엔터업계에서 횡행한 음반 밀어내기죠. 이는 글로벌 슈퍼팬을 중심으로 한 KPOP 시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급자 중심적 시각을 견지하였을 때, 명백히 잘못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음반 밀어내기'는 업계 내부나 KPOP 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내용이었지만 외부에서는 그다지 조명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4년 하이브-어도어 사태 중 민희진 씨의 입을 통해 대중에게까지 알려지기 시작했죠. 그 의미는 KBS 기사와 아래 차우진님의 아티클에서 빌려와보겠습니다.

☠️ 이대로 가면 케이팝은 끝납니다
음반 밀어내기, 바꿀 수 있을까?
‘음반 밀어내기’는 중간 판매상에게 음반 물량 일정 부분을 구매하도록 해 판매량을 올리는 방법으로, 중간 판매상은 물량을 소진할 때까지 멤버들을 동원하는 팬 사인회 등의 행사를 열어 팬들의 음반 중복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kbs)
'음반 밀어내기'는 기획사가 음반 판매처에 미리 정해진 물량을 공급하면, 판매처에서는 그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팬 사인회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어떤 케이팝 그룹의 팬사인회 비용이 최소 5억 원이라면, 음반 판매처는 이 그룹의 음반을 5억 원 어치 매입한 뒤 팬싸인회 추첨으로 소진할 수밖에 없다. (차우진의 엔터문화연구소) 

음반 밀어내기는 몇 년간 출고량 같은 지표나 스타트업의 매출에는 양의 방향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음반의 출고량이 최근 과도하게 증가한 이유에는 실수요의 증가분을 초과하는 밀어내기 문화가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2023년 음반 출고량이 1억 1천만장을 돌파한 것에 대해 너무 많은 버블이 꼈다는 시선이 많았죠.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저 정도는 아니야..")

KPOP의 성장에 따라 매출을 올리고 싶어한 스타트업들은 이 밀어내기 문화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은 기획사 대비 협상력이 낮았기에 밸류체인의 뒷쪽에서 앨범별로 수억에서 수십억을 들이며 음반을 떠안았고, 주로 국내 팬덤을 상대로 무한 팬싸인회를 개최하며 재고를 소진하는 데에 매진하였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매출액 상승과 기업의 성장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1) 충분한 운전자금 확보를 어렵게 만든 금융 시장의 경색, 2) 공급-수요 불균형 심화와 국내 팬덤의 부정적 심리 확대로 인한 재고 소진 어려움 증가, 3) 국내 시장에서 유통 사업자의 얇은 공헌이익률 등의 문제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금방 지속가능성에서 한계를 맞았습니다.

팬덤은 '무한 팬싸'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이렇게 거품이 터지면서 기획사의 음반 출고량, 그룹별 초동 등 지표는 당연히 곧바로 타격을 입었고, 치솟던 엔터사 주가는 23년 말부터 하락하였습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형 사업자들은 음반 밀어내기 모델을 통해 규모있는 매출액 성장이 있는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버블이 끝나자 현금흐름에 타격을 입었고 악성재고를 끌어안은 채로 사업을 정리하는 곳들도 다수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고려하면 KPOP 사업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를 단순히 KPOP 시장의 축소로 퉁치고 넘어가기에는 오류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KPOP은 글로벌 빅마켓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사실은 크게 주목받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동안 시장의 성장 파라미터로 보이던 것들은 일정부분 음반 밀어내기와 같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 모델에 기반하고 있고, 바로 그 지속가능성의 부재로 사업 모델이 무너지면서 지표가 꺾이는 모양새가 나오게 된 것이죠.

글로벌 기회는 누가 먹고 있을까?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실제로 산업의 변화에서 누가 가치를 창출하고, 포착하는가?' 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KPOP 업자들의 빚을 지고 얇은 마진을 긁어내는 동안 글로벌 빅마켓의 노릇노릇한 과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KPOP 산업 규모는 8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국내 4대 기획사의 매출액 합은 4조원 규모입니다. 중소형 기획사나 국내 기반 유통사의 매출액 합계는 다 합쳐서 1조원 내외에 불과하죠. 경쟁강도, 마진율 등 모든 메트릭에서 우월한 시장 기회의 절반은 여전히 비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글로벌 슈퍼팬이라는 초과 수요에 대한 공급망이 전혀 원활하지 않고, 추가적으로 열 수 있는 시장 기회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KPOP 슈퍼팬을 이해하고, 글로벌 개척 마인드셋을 가진 터전에서만 이 수조원의 기회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KPOP 시장도 이제 5년밖에 안된 신생시장입니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멕시코 각지는 아직 시작도 안한 셈에 가깝습니다. 빅마켓 중 보아와 동방신기가 길을 개척한 일본 정도만 성숙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희와 함께 글로벌 KPOP 시장의 과실을 캐낼 분들을 찾습니다 (채용공고 펼쳐보기)

미주/유럽 시장에서 슈퍼팬 중심 KPOP 레이블 및 유통 사업을 전개하는 hello82에서 글로벌 KPOP 시장을 함께 개척할 분들을 찾습니다. hello82는 미주/유럽 지역 음반 발매 및 유통을 중심으로 프로모션, 공연, 콘텐츠 제작, 팝업, D2C 판매 등 총체적인 슈퍼팬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https://www.billboard.com/business/record-labels/kai-media-k-pop-label-hello82-funding-expansion-1235648211/)

hello82는 LA, 아틀란타, 샌디에고 등에 직접 진출해 미국 각 지역 팬들이 사랑하는 팬스페이스가 되었습니다. 또 Target, Walmart와 같은 대형 리테일러 및 전미/유럽 100여개 로컬 KPOP 스토어와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페스티벌 형태의 유통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25년 중 뉴욕, 댈러스, 시애틀 등 미국 내 주요 도시, 그리고 유럽과 멕시코에 오프라인 공간 신설을 준비중입니다. 미주/유럽 주요 소비 지역의 슈퍼팬들과 함께 KPOP 에코시스템을 같이 만들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거나 다른 맥락에서라도 이야기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링크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채용 포지션 :

  1. 독일(EU) General Manager, Commerce Manager
  2. 멕시코(남미) General Manager, Commerce Manager

R&R :

  1. 해당 지역에서 Physical retail 사업 및 팀 구성/운영
  2. E-commerce 관리
  3. 지역별 주요 파트너와의 B2B 사업개발

Preference :

  1.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와 실행에 강점이 있으신 분
  2. 한국어+영어 가능자. 스페인어 가능자. 독일어 가능자. 단순 언어보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에 진심이신 분

데이터 - 눈 가리고 다트 던지기는 그만

KPOP 산업이 글로벌 슈퍼팬 산업으로 변모하면서 데이터의 중요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데이터라는 '맵핵'은 변화한 음악 산업의 플레이어에게 필수재가 되었죠. 그 근본적인 이유는 가장 최근에 심해지고 있는 디커플링 현상에 있습니다.

르세라핌 케이스 스터디

하이브 레이블 중 하나인 쏘스뮤직 소속 걸그룹 르세라핌에 대해 아시나요?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신가요?

르세라핌은 2024년 4월 13일 전세계 최대 규모 뮤직 페스티벌 '코첼라'에 올랐다가 가창력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실망스러운 라이브 실력으로 인해 팬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나라망신이라며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주 후, 4월 25일 어도어의 민희진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면서 르세라핌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감정은 더 커졌습니다. 기자회견에서는 어도어 소속 뉴진스에 대해 하이브 경영진이 르세라핌의 데뷔나 성장에 방해가 될까봐 견제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습니다. 연속적인 사건으로 르세라핌에 대한 펀더멘탈이 무너지는 모양새였죠.

4개월 후, 8월 30일 르세라핌은 'Crazy'라는 이름의 네 번째 미니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컴백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타이틀곡은 멜론 Top 100 차트에 69위로 진입하였다가, 최고 38위까지만 찍고 지속 하락하였습니다. 직전 앨범의 'Easy'가 3위를 차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하락폭을 보인 것이죠. 피지컬 앨범 초동 판매량은 직전에 98만장에서 68만장으로 떨어졌습니다. 역시나 '폭망'한 것일까요?

그런데 동시에 Crazy는 미국 내에서의 음원 유통량을 기반으로 집계하는 빌보드 Hot 100 차트의 76위라는 커리어 하이 순위로 진입하였고, 2024년 KPOP 그룹 발매곡 중 유일하게 2주 동안 차트인에 성공하였습니다. 또 영국 오피셜차트와 일본 빌보드재팬 차트에서 모두 음원 성적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미국 내 피지컬 앨범 판매량을 집계하는 빌보드 Top album sales 차트에 1위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음반 차트 빌보드 200차트에 7위로 진입하여 4주간 차트인했습니다. 멜론 70등대가 빌보드 70등대라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LESSERAFIM, which achieved “career high” on the U.S. Billboard chart, has entered the long-term box .. - MK
LESSERAFIM, which achieved “career high” on the U.S. Billboard chart, has entered the long-term box office.According to the latest chart released by the U.S. music media Billboard on the 24th (local t…

KPOP 디커플링

오랫동안 KPOP 산업에서는 결국 한국에서 잘되어야 해외에서 잘된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본진에서 성공해야 서브 시장에서도 낙수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논리였죠.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드린 것처럼 한국인들의 생각(혹은 소망)과 달리 한국은 명백히 본진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내러티브는 아시아 시장을 타겟으로 하던 수 년전에만 적용되던 로직이었죠.

특히 글로벌 슈퍼팬은 거점별로 전혀 다른 팬덤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그룹, 유럽에서 인기있는 그룹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KPOP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은 해외 가수들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죠.

KPOP 디커플링은 글로벌 슈퍼팬현상으로 인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 KPOP 산업이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이러한 현상은 더 선명하게 보이는 듯 합니다. 글로벌 사업을 생각하면 더이상 멜론차트는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못합니다.

흥행산업 프레임워크의 종말

핵심은 데이터입니다. 글로벌 오디언스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뉴미디어 플랫폼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팬들이 존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냈습니다. Fan finding과 Fan engagement를 위해서는 데이터라는 렌즈 없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장이 된 것이죠.

이는 기존 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던 흥행산업 프레임워크를 정면 반박합니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예술이고 '좋은 노래', '멋있는 가수'라는 것을 정량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로 인해 엔터업에 대한 투자는 '훌륭한 프로듀서'라는 단 하나의 변수에 굉장히 의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슈퍼팬의 시대에도 여전히 흥행산업이라는 한 단어에 엔터테인먼트 업을 배치해두는 것은 사실 게으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업에서도 정량적 판단과 체계적 사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예술과 결부되었을때 그 시너지의 크기는 극대화 됩니다.

이전 글에 소개드린 Chartmetric에서는 음악과 관련된 메타데이터 분석 결과를 제공합니다

How to fail

여느 컨슈머 산업처럼 KPOP 산업도 매년 매 순간 트렌드를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로 변화가 빈번합니다. 그러기에 '잘하는 회사'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산업의 변화를 큰 틀에서 보고 있으면 KPOP 비즈니스 실패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단일BM에 의존
    자원이 한정적인 스타트업에게는 가혹하게 들릴만한 이야기지만, 슈퍼팬을 상대로하는 사업에서는 단일 비즈니스 모델에 의존하는 형태는 리스크가 상당히 큽니다. 슈퍼팬의 종합적인 소비 활동을 캡쳐할 수 있는 에코시스템 형태의 횡적 확장 비즈니스 전개가 중요합니다.
  2. 한국 먼저, 그 다음 글로벌
    한국은 KPOP의 본진이 아닙니다. Quantity에서도, Price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브시장에 매달리는 것이 본진에서 잘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경쟁도 치열하고, 마진은 점점 더 박해지고 있습니다.
  3. 엔터는 예술. 결국은 흥행
    데이터는 새로운 눈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엔터는 무조건 흥행이라는 프레임워크를 고수하는 것은 스스로 눈이 머는 길을 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눈 가리고 다트를 던져도 정중앙에 꽂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눈을 뜨는게 낫죠.
  4. IP Holder is KING! 기획사에 매달리자
    한국에서 기획사는 왕으로 여겨집니다. 기획사가 영업권, 상표권 등을 주느냐 마느냐가 결국 소형 스타트업의 명운을 가르기도 했죠. 하지만 이는 플레이어간 가치가 거의 무차별한 환경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 입니다.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지속적인 시장 비효율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기획사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시장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마찰지점을 포착하는 것이 기획사에 매달리는 것보다 가치 창출과 포착, 유지 관점에서 훨씬 중요합니다. 심지어 그게 기획사에도 더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쇼피파이 창업자 Tobi Lutke는 자유시장경제를 믿는 사람들의 착각을 이야기 합니다.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룬다고 믿는 것이죠.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수요와 공급 사이 불균형에 따른 지속적인 마찰이 있고, 이는 곧 스타트업에게 기회로 작용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글로벌 슈퍼팬 비즈니스로 변모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KPOP에는 지속적인 수요와 공급 간의 마찰이 존재합니다. 글로벌 슈퍼팬은 언제나 초과 수요를 만들어내죠. 많은 사람들이 시대착오적 지표만 보고 떠나간 KPOP 산업에 산재한 마찰은 이제 막 수확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김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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