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차: DST Global

조용한 컨트라리안, 글로벌 아비트라져, 노터치 파운더 프렌들리. DST Global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13일차: DST Global

DST Global Highlight

  • 창업가 Yuri Milner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이론 물리학으로 Ph.D 과정을 밟던 중 한계를 느끼고 진로를 틀어 Wharton Business School에 진학합니다. 이후 투자 및 M&A 업무를 했으나, 미국과 유럽에서 eBay나 Amazon같은 인터넷 기업들이 급부상하는 것을 주목하고 러시아에도 충분히 비슷한 회사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Netbridge를 창업해 미국의 IT 사업모델들을 러시아에서 인큐베이팅하거나 투자하는 일을 하고, 이후 2001년 러시아의 인터넷 기업 Port.ru와 합병하면서 Mail.Ru라는 이름의 회사를 이끌게 됩니다.
  • DST Global은 2009년 Mail.ru Group(현 VK Company)으로부터 spin-off되어 설립된 growth stage VC입니다. 글로벌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계열 분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Check size가 통상 ~$200M 정도인, 이미 잘 알려진 회사의 Series C 이후에 투자하는 셈입니다.
  • AUM은 ~$50B 수준으로 추정되며, 2015년 기준으로 DST Global의 자산 배분은 40%미국, 40%중국, 20%인도 및 유럽이었다고 합니다. 투자 실적은 별도 공개된 바 없습니다만, 잘 알려진 몇 개의 투자건들이 명시적으로 엄청난 투자 수익을 가져다 준 점, 그리고 Yuri Milner가 직접 2021년 초까지 원금 손실을 기록한 투자건은 단 두 건 뿐이었다고 말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업계 최상위 수준의 track record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 주요 포트폴리오로는 다음과 같은 회사들이 있습니다.
    • 미국: Facebook, Twitter, Airbnb, Snap, WhatsApp, Doordash 등
    • 중국: Alibaba, JD, Xiaomi, Bytedance, Meituan, Didi 등
    • 인도: Flipkart 등
    • 한국: 당근, 컬리
  • "러시아 자본" 프레임으로 공격받기도 했습니다. Yuri Milner가 러시아 출신인데다가, DST Global 출범 초기에 초기 투자자로서 도움을 준 러시아 철강 재벌 Alisher Usmanov가 대표적인 친 푸틴 인사이기 때문이죠. DST Global은 대중 및 투자자들에게 "DST Global의 투자 활동은 러시아와 전혀 관계가 없다"며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 특이하게 파트너들의 초기 단계 개인 투자를 허용하는 것을 넘어 장려합니다. DST Global 본계정으로 투자하기에는 사이즈가 작지만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회사들을 대상으로 투자하며, 언론에는 DST Global Partners라는 명칭으로 보도됩니다. 일종의 딜 소싱 파이프라인으로서 기능하는 셈이죠. 우리나라 회사 중 DST Global Partners의 투자를 받은 회사는 플렉스, 마크비전, 그리고 레브잇이 있습니다.
DST Global

역대급으로 아무것도 없는 홈페이지. 팀 소개, 포트폴리오 소개, 인사이트 아티클로 가득한 다른 VC들을 떠올려 보면 퍽 신선하다.

DST Global의 대담한 생각들 (contrarian)

앞서 살펴본 모든 VC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contrarian이었는데요(그래서 저희가 특히 선정한 것이기도 하지만요!), 오늘 살펴볼 DST Global는 다른 매체에서도 특히 maverick, 이단아같다는 평을 듣곤 하는 VC입니다.

글로벌 투자를 하는 VC도 흔치 않은데, 확장 경로는 더 특이합니다. 국제관계에서 미국과 대척점에 서 있는 러시아에서 출발해 중국에도 많이 투자하고 미국으로 진출했으니까요. 무엇보다 규모도 크고 성과도 엄청나고 그 행보 또한 일반적이지 않아서 이래저래 눈에 띄기 마련인데, 꽤나 조용한 편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팟캐스트 등으로 열심히 소통하는 것도 아니고, 인사이트 리포트를 열심히 발간하지도 않습니다.

Quiet is the new loud!

1) Identify Early: 이거 확실하게 뜰 것 같은데?

모든 VC에게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바로 macro trend를 읽어 내는 능력일 것 같습니다. 이미 와 있는 상태에서 알아채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겠지요. 남들보다 빨리 알아채는 것, 트렌드가 언제 도래할지 아는 것, 그 트렌드가 얼마나 핵심적인지 분간해내는 것이 진짜 실력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DST Global은 무엇에 주목했는지 알아봅니다.

2) Arbitrage Globally: 이거 딴 데서도 될 것 같은데?

창업 아이템을 정할 때 가장 자주 보이는 유형 중 하나가 "해외에서 잘 된 사업모델 복사하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DST Global도 이런 방식으로 투자합니다. 잡은 건 잡은 대로, 놓친 건 놓친 대로, 한 지역에서 성공한 모델의 해외 버전을 찾아서 투자합니다.

3) Move Flexibly: 유연하게 가도 될 것 같은데?

앞서 살펴본 많은 VC들이 founder friendly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그 방식은 제각기 달랐습니다. DST는 회사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딜 구조도 과감하게 추진하는 방식으로 그들만의 founder friendly를 실천하고 있죠. 그 밖에 내부 직원들이 투자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타 VC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In Startup World, No Shock Over Yuri Milner Role in Paradise Papers | WIRED
DST Global의 창업자 Yuri Milner.

생각 들여다보기 1. Identify Early: 이거 확실하게 뜰 것 같은데?

Yuri Milner가 Netbridge를 설립할 즈음, 당시 Morgan Stanley에 있던 인터넷의 여왕 Mary Meeker의 리포트를 보고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eBay와 Amazon같은 혁신적인 회사들이 등장해서 미주와 유럽의 사회경제를 완전히 뒤흔들고 있었던 거죠. (Jeff Bezos가 인터넷 사용량이 연간 2,300%씩 성장하고 있다는 통계를 보고 Amazon을 차렸던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는 자국 러시아에서도 충분히 큰 인터넷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러시아라는 국가에 국한해서 보면 그는 확실하게 올 트렌드를 남들보다 미리 발견하고 행동으로 옮긴 셈이죠. 당시 대체재가 별로 없던 상황에서 Mail.ru는 러시아의 초기 인터넷 사용자들을 쭉쭉 빨아들이면서 성장합니다. 이후 포털, 게임, 쇼핑, 메신저, 클라우드, 소셜 서비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고, 2010년 London Stock Exchange에 성공적으로 IPO하게 됩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가 돈이 된다는 인사이트를 미국 등 다른 해외 투자가들보다 한 발 먼저 갖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환경 때문에 러시아의 소셜 미디어 업체들은 훨씬 더 일찍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그들이 광고 및 기타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죠. (이 인사이트가 어떻게 투자로 연결되었는지는 [생각 들여다보기 2.]에서 이어서 설명합니다!)

이처럼 DST Global이 일찍부터 깊은 확신을 가졌던 사업 모델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The monetization potential of social networks. 
  2. The growth of global e-commerce. 
  3. The feasibility of the gig economy. 

이커머스의 파괴적 혁신을 확신한 이후에는 groupon, JD.com, Alibaba, Zalando, Flipkart, Boxed, Wish, Meituan 등에 투자했으며, 공유 경제 모델이 작동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는 Airbnb, Didi, Alto Pharmacy, Swiggy, Ofo 등에 투자하기도 했죠.

생각 들여다보기 2. Arbitrage Globally: 이거 딴 데서도 될 것 같은데?

Yuri Milner는 "한 지역에서 성공한 사업 모델이라면 다른 지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당장 Mail.ru가 그런 방식으로 성공했으니까요. 그는 한 지역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성공 방정식을 글로벌 주요 권역마다 복제하기로 합니다.

2009년 $10B 밸류로 facebook Series D에 $200M를 투자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미국 내에서 인지도가 전무하다시피했던 DST Global이 미국 벤처캐피탈 씬에 강렬하게 데뷔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죠.

당시 facebook은 런웨이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성장을 위한 자금 수혈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투자자들과 눈높이가 너무 달랐던 점이 문제였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기가 폭락한데다가, 당시 facebook의 수익화 플랜도 애매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2007년 $15B라는 엄청난 밸류로 투자를 받았지만 2년 뒤인 2009년 미국 VC들의 컨센서스는 고작(?) $4B~$8B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DST는 미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유저당 매출이 러시아나 중국의 벤치마크 대비 훨씬 낮다는 점을 발견했고, facebook의 잠재력이 저평가되어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수익성을 제고한 사례를 많이 접했던 덕분에, 광고를 비롯해서 유저를 수익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액션들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죠.

DST는 "무조건 투자해야 한다"는 강력한 확신을 바탕으로, 잘 만나주려 하지도 않는 facebook 본사를 무작정 찾아가서 설득합니다. 다른 VC들보다 월등히 높은 밸류인 $10B에 투자를 하겠다는 점,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파트너라는 점을 바탕으로 끝내 Mark Zuckerberg의 마음을 얻어 내는 데 성공하죠.

당시 미국 VC들의 반응은 굉장히 냉소적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쏘아붙이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었죠.

‘Crazy Russian. Dumb money. The world is coming to an end, this is insane.’

facebook은 보란듯이 날아오릅니다. 2011년 초 Goldman이 $50B에 투자한 것에 이어서, 2012년 IPO에는 기업가치 $104B를 기록하며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상장 케이스로 이름을 남기게 되죠.

facebook 기업가치 변천사 (before IPO)
Two foreign investors respected in Silicon Valley became embroiled in  controversy this weekend.
Yuri Milner(좌)와 Mark Zukerberg(우). 역시 믿고 있었다구!

DST의 Global Arbitrage 전략은 다른 영역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대표적으로 음식 배달, 식료품 배달 등 영역에서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죠.

미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사업 모델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 지역에서 놓쳤다면 다른 지역에서는 잡으면 되는 것이죠. DST가 놓친 딜 중 가장 뼈아픈 것으로 꼽히는 게 Uber와 Pinduoduo인데요, 전자의 경우는 Didi, Ola, Ofo 투자로, 후자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의 Super 투자로 arbitrage 전략을 이어 갑니다. 가깝게는 작년 Pinduoduo의 사업 구조를 벤치마킹한 올웨이즈(레브잇) 투자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죠.

생각 들여다보기 3. Move Flexibly: 유연하게 가도 될 것 같은데?

DST Global은 앞서 살펴본 대로 특정 사업모델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기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사업 모델을 이미 어느 정도 잘 키워가고 있는 회사에 베팅합니다.

일단 회사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면, 투자 조건을 조율할 때는 유연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VC라고 보여집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이사회 참여 안 해도 괜찮아!

적극적인 value-add를 추구하는 VC들은 종종 이사회 의결권을 요청하고 의사결정에 관여합니다. 특히 지분율이 높을수록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DST는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철학은 '창업가를 믿기 때문에 의사결정도 온전히 위임한다'는 건데, 지분 희석으로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하는 창업가에게는 무척 달가운 일입니다. facebook 투자시에도 이사회 의석도 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확보한 지분에 대한 의결권까지 위임했던 것은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싶어하던 Mark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그렇다고 DST가 spray and pray하는 하우스는 아닙니다. 다만 이사회 의석 없이도 충분히 회사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을 뿐이죠. 실제로 DST의 파트너들은 포트폴리오 경영진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합니다. 투자받은 창업가들도 "DST가 마이크로매니지는 지양하면서도, 사업을 위대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중요한 포인트들에 집중한다"고 말한 바 있고요.

이사회 의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global arbitrage 전략이 가능하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통상 VC업계에서 직접적인 경쟁사에는 잘 투자하지 않습니다. 도의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기업 기밀 유출 등으로 인한 이해상충 문제(conflict of interest)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DST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고 경영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들에도 문제없이 투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밸류에이션 좀 양보하고 구주 매입하지 뭐!

기업가치는 투자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종종 치열한 협상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DST Global은 valuation에서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입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유연한 거지 Tiger Global이나 Softbank Vision Fund와 같이 시원하게 올려 부르는 스타일까지는 아닙니다.)

사업모델에 대한 깊은 확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구주 거래(secondary share transaction)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통상 구주는 신주 대비 10~20%가량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신주와 구주를 섞어서 매입할 시 지분율은 높이면서도 blended valuation은 낮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죠. DST는 facebook 투자시에도 임직원들의 구주를 대량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 평균단가를 낮춰 매입합니다.

여담이지만 facebook 투자를 기점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이사회 의결권을 요구하지 않고 구주를 매입하는 방식을 "DST Deal"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여러 창업가들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는 증거겠죠.

“I want my DST deal!” several reportedly said. In the Bay Area, “dozens and dozens of CEOs” have approached Industry Ventures, a secondary investor in San Francisco, about getting a similar deal for their companies, according to founder Hans Swildens. “They think, ‘If Facebook did it, why wouldn’t we?’” he says. “When somebody wires your neighbor $2 million, you start thinking about it, too.”

추가자료

DST Global: The Quiet Conqueror | The Generalist
DST has one of the craziest track records of all time. Somehow, it still slips under the radar.

훨씬 더 디테일하고 생생한 스토리들이 담겨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