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이 주니어 VC가 되고 싶은 이유
창업에 관심 있는 요즘 대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글의 순서
나는 왜 비상장 기업 투자를 첫 커리어로 삼고 싶은가
전형적인 외고생이 처음 창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일단 해보자, 창업동아리 만들기
AI 연구보다 창업이 더 맞을 지 몰라
K-Garage 창업의 쓴맛
나는 DeGen은 아니었나 보다
우리 회사는 괜찮겠지 걱정하는 병특 생활
복학하니 개발자도 AI로 대체된다
지난 4월 16일, 한 아티클이 스타트업 신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Capital Edge에서 발행한, "왜 VC 주니어는 공공의 적이 되었나"라는 글입니다. Associates 레벨의 주니어 VC들에 대한 실리콘밸리에서의 부정적인 시선과 그에 대한 논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주니어들이 창업자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글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주니어 VC/PE를 꿈꾸는 대학생입니다.
저는 왜 그런 진로를 꿈꾸게 되었을까요? 저는 주니어로서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고, 또 하는 일이 제게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드리려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왜 비상장 기업 투자를 첫 커리어로 삼고 싶은가
저는 사실 좀 특이한 대학 생활을 해왔습니다. 4곳의 회사에서 인턴, 3곳의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을 하며 여러 분야에 직접 발을 담가보고, 내게 맞는 길은 무엇인지를 오래 찾아왔습니다.
특히 최근에 일을 하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해야할지 고민한 것들을 혼자 정리해보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였습니다.
그 과정 끝에 제가 스스로 파악한 지금까지의 소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 여러 이슈를 동시에 다루기를, 장인처럼 하나만 깊이 파는 것보다 좋아합니다.
- 미래에 대한 가설을 세워보기를 좋아합니다.
-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구조화하기를 좋아합니다.
- 하지만 성과는 단기적인 것보다 장기적으로 바라보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제 특징들을 보면서, 비상장 기업 투자(VC, PE)를 나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한 VC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표가 겪는 고민들에 같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보태는 일을 합니다. VC 심사역으로서 포트폴리오 회사 곁에서 그 여정을 함께 하며, 바깥에서 가장 열렬히 도와주고 응원해줄 수 있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깥에서 조직에 필요한 자본을 제공해주며, King Maker, 서포터로서의 미래를 꿈꾸기에 좋아보였습니다.
앞으로 나올 경험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다양한 산업에 호기심을 갖고 공부해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스타트업이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와 비전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직접 대표가 되어 창업하기보다 그들을 돕는 방법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VC라는 일이 제게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겪었길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제 경험 하나만으로 저희 세대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제가 겪은 경험담을 중심으로 창업 생태계 옆에서 함께 변화를 겪었던 대학생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2016년, 전형적인 외고생이 처음 창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우선 대학생 때 이야기를 하기 전, 고등학교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외국어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주로 변호사, 회계사, 금융권 등의 진로를 목표로 나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진로 선택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게는 5살 위로 친형이 한명 있습니다. 형이 대학 생활을 하며, 창업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구요. 그때까지만 해도, 창업이란 게 있구나 정도만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형이 갑자기 창업을 하겠다며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러 집에 왔습니다.
부모님의 허락 조건은, 노력의 근거로 학교 창업 공모전에서 실적을 내오라는 것이었고, 형은 그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학교에 사무실을 얻어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형이 동아리 활동 열심히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그 작은 스노우볼이 하나의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형의 회사가 점차 기업다운 모습을 갖춰갈수록, “아, 이런 진로도 있구나” 하고 눈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처럼 꼭 가족이 창업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청년 창업, 대학생 창업을 호의 어린 눈으로 바라봐주었고, 주위 선배, 친척, 지인들의 창업 사례가 많이들 제 또래에 퍼지던 시기였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당연히 제가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창업과 스타트업신을 제 진로 범위에 진지하게 염두에 두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9년, 일단 뭔가 해보자, 창업동아리 만들기
저는 2018년 대학교에 입학해서, 자유전공학부를 다니고 있습니다. 자유전공학부는 전공을 본인 마음대로 선택하여 진입할 수 있는데요, 저는 경영학을 첫 전공으로 골랐습니다. 그리고 PE와 컨설팅회사에서 2019년, 2020년에 인턴을 하며 여러 진로를 탐색해보기 시작합니다.
재밌었습니다. 특히 PE에서 일할 때는 아직도 인턴 경험들을 돌아볼 때 가장 즐거웠던 때라고 회고하곤 합니다. 함께 인턴 생활을 겪은 선배들도, 일을 가르쳐주신 사수와 상사분들도 모두 좋았고, 일도 재밌었습니다. 지금 투자업을 첫 커리어로 삼고자 하는 결정을 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형의 영향이었는지 일찍이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19년, 창업에 관심 있는 친한 대학 동기와, “우리 창업 이야기하면서 편하게 놀 동아리방을 하나 얻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저희 학부에 창업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냥 창업에 대한 어렴풋한 관심만 갖기보다, 사람들을 모아보면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에 일단 일을 벌리기 시작한거죠.
그런데 이게 웬걸, 지원서가 쏟아졌습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하게 동아리 부원을 많이 늘려야 했고, 갑작스레 창업동아리다운 커리큘럼을 만드느라 급급했습니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과 함께, 각자 작은 아이템을 가지고 MVP를 만들어보며 시장 검증에 나서기도 하고, 해커톤을 열어 VC 심사역분들의 평가도 받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아리원들에게 스타트업 인턴 취업을 연계해주면서 점점 저는 스타트업 신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당시에는 코딩 붐이 불고 있었습니다.
자유전공학부 동기들도 마찬가지로 컴퓨터공학 전공에 진입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저도 우선 코딩 독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순전히 호기심이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물론 기초적인 문법을 배우는 독학 강의였으니, 머리 아픈 부분보다는 쉬운 과제 중심이었긴 합니다. 그래도 당시 편도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통학 길에, 2호선 지하철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코딩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조금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지하철에서 책 한 권도 여태 읽은 적이 없었던 저는 이런 적이 처음이었습니다.
2020년, 나는 AI 연구보다 창업이 더 맞을 지 몰라
그래서 2020년에 컴퓨터공학도 주전공으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모두가 한번쯤 고민해보는 진로, 대학원 진학을 탐색해보기로 합니다. 워낙 인기가 늘고 있는 인공지능을 공부해볼 계기로 삼기 위해, 우연히 본 페이스북 텐서플로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고에 지원해, 교내 AI연구원에 연구인턴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대학원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 AI 트렌드를 좇기 위해 논문을 읽어나가는 게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구보다는 창업 쪽으로 눈이 더욱 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분들의 조언도 이런 제 관심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인턴을 끝내고, 제 사수였던 주니어 분들이나, 제 인턴 동기들과 제 진로에 대해 말을 나누다 보면 모두 입을 모아 “넌 창업해야지”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하더라구요.
그때가 막 창업 성공 사례들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창업이라는 좋은 선택지가 생겼음을 각인시켜주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스타트업을 주제로 한 국내 드라마가 생기기까지 시작했으니까요.
실제로 당시 2020년은 최근 10년 중 2번째로 가장 많은 스타트업이 창업한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요? 그래, 다들 이렇게 나에게 창업을 권유하는데, 나한테 맞는 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2021년 상반기, K-Garage 창업의 쓴맛
실제로 저는 창업에 도전해본 적 있습니다. 대학 동기와 오큘러스 퀘스트2를 처음 써보고 VR에 빠져 VR 스터디를 하기 시작한 게 그 계기입니다.
VR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둘이서 용산 전자 상가를 방문해서, 데스크탑 한대씩을 마련했습니다. 제 자취방에 그 컴퓨터 두대를 놓고, VR 산업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VR을 공부해보니, 기왕 공부할 거, 게임보다 더 크게 시장 초기에 하기 좋은 플랫폼 아이템을 직접 만들면 어떨까 하고 자취방에서 아이디에이션을 시작합니다.
스터디를 하면서 앱이 아닌 웹 기반 VR 게임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저는 친구와,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 이렇게 셋이서 VR판 노라라를 꿈꾸고 <웹 기반 VR 플랫폼 사이트>의 MVP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Reddit이나 국내외 커뮤니티 등에 홍보를 해보면, 잠깐 호기심에 사람들이 접속을 하긴 하지만, 또 오고 싶은 포털 사이트가 되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웹VR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수익을 얻지 못하니 주로 취미로 게임을 개발했고, 따라서 포털에 매일 들어오고 싶을 만큼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창업할 사람이 맞나?
결과가 안좋을 때, 버티며 고민해야 하는 게 창업가의 자세라는 걸 알지만, 제 의지는 생각보다 약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겪다보니, 나는 당장 창업할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어준 건, 당시 사무실에서 읽은 책 ‘크래프톤 웨이’였습니다.
크래프톤, 당시 블루홀 창업자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다 보면, 얼마나 힘들고 어두운 시간을 버텨왔는지가 절절히 느껴집니다.
“나는 과연 이분들처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저는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 아이템을 가지고 휴학을 더 하는 것조차 부담을 느끼며 버티고 있는데, 내 인생을 걸 베팅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가 싶더라구요. 결국 제게는 졸업 후에 바로 창업을 하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직은 창업을 하기엔 전 아직 심지가 굳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저희 팀은 아이템을 포기하고, 각자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방향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열정 가득한 대학생들의 한국판 차고 창업이, 결국 병역이라는 K-엔딩으로 귀결되었습니다...
2021년 하반기, 나는 DeGen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대학 동기와 저는 각각 병역특례를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게 빠르게 취업이 되어, 규모가 큰 클라우드 회사에 취업해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던 와중, 사람들의 관심을 한껏 모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블록체인, 코인, NFT였습니다. 이미 주변에서 근로 소득으로 벌 수 없는 부를 코인으로 거머쥔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잠시 코인 하락으로 식었던 관심을 NFT가 다시 되살려 놓았습니다.
이 시기에 IT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저처럼 NFT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을 것 같습니다. 저도 NFT가 새로 주목을 받는 김에, 회사에서 블록체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모여 이 분야를 공부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 컨트랙트 스터디에도 참여해보고, 팀 디자이너분들이 만든 캐릭터를 NFT로 발행도 해보며 점점 관심을 키워나갔죠.
그때는 흔히 말하는 디젠(De-Gen)처럼 여러 NFT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또 어떤 것들은 직접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내 돈을 조금이라도 넣어둬야 내가 관심을 가진다'라는 접근이었습니다. Ghosts, RECUR, Voiceverse 프로젝트 등의 NFT부터, 소투와 같은 미술품 조각 구매까지, 조금씩 사보면서 공부해나갔습니다. 아직도 미국 시간에 맞춰 NFL All Day NFT를 구입하려고 티켓팅 하듯 잠을 설쳤던 기억이 선명히 나네요 :)
하지만, 결국 그때 제가 내린 결론은, 아직 제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DevOps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블록체인 기술이 제가 바라는 인프라가 되어주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시간을 갖고 혁신을 기다려주어야겠지만, 블록체인이 그려주는 미래에 당시 저는 완전히 설득되지 못했고, 블록체인이 열어주고 있는 새로운 기회들에 더이상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새로 주목받는다고 다 나에게 맞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저 나름의 주관, 나는 과연 어떤 미래에 설득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중 크립토 씬에 겨울이 찾아왔고, 저도 다른 분야들로 눈을 돌렸습니다.
2022년, 우리 회사는 괜찮겠지 걱정하는 병특 생활
그러던 와중, 1년 정도 비교적 큰 회사에서 병역특례를 하고 있던 저는, 더 작은 회사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리즈 A 정도를 받은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때 제가 이직을 고려하며 세운 기준은 딱 2가지였습니다.
- 글로벌하게 사업을 영위할 것
- BEP를 맞췄거나 맞출 가능성이 높을 것
2번 조건은 그때 스타트업 생태계의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중반부터 미국발 겨울 소식이 들리더니, 그 한파는 이내 곧 우리나라에도 불었습니다. 시장에 유동성은 부족해졌고, 스타트업들은 예전보다 더 강하게 이익을 낼 것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를 교훈 삼아, 사람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내려 노력했습니다. 당시 스타트업 관련 카카오톡 방에서는 여러 아티클들이 유행을 했습니다. Paul Graham의 Why to Start a Startup in a Bad Economy 아티클을 보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다지기도 했고, 세콰이어 캐피탈의 R.I.P. Good Times 자료를 보며 기존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모색하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투자자들만 스타트업들에게 생존을 위한 수익성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 같은 구직자도 회사를 고를 때에 수익성을 더 크게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한파에 영향을 받아, BEP를 맞춰 본 적 있되, 이전 회사와 같이 B2B SaaS 사업을 하고 있는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보릿고개는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코로나 때 낮췄던 금리가 회복세를 유지한데다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자본 시장은 예전처럼 벤처 기업에게 따뜻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어느 정도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3개월일지도 모르고, 3년일지도 모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상황이 언제 평화로워질 것인가,
요즘에 대만과 중국의 상황이 몹시 걱정되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 금리를 올리는 움직임이 계속되는 거고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결산 기자회견. (쫌아는기자들 역)”
그래서 저도 2023년 동료들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업계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옆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했다더라, 너도 조심해라… 와 같은 섬뜩한 이야기가 잠시 기억 속에 잊혀질 무렵, 제가 몸담았던 회사는 2023년 여름, 제가 회사를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그렇게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씁쓸한 카톡 연락을 받아보며,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23년 하반기, 복학하니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AI
그렇게 병특을 마친 2023년,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아시다시피 2023년은 ChatGPT를 필두로 LLM이 크게 주목을 받은 한 해였습니다. 수많은 새로운 회사들이 AI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023년, 병역특례를 마치고 복학하여 학교에 돌아와보니, 이미 대학은 ChatGPT가 점령한 세상이었습니다. 어떤 교수님은 ChatGPT 사용을 권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교수님은 ChatGPT를 활용해 그대로 과제를 제출한 학생에게 0점을 주기도 했죠. 학교 입장에서 이런 LLM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통일된 입장이 나오진 않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의 입장은 통일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제하거나 공부할 때 당연히 ChatGPT 써야지.”
이미 LLM에 익숙해진 여러분들에게는 놀라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2년 겨울에만 해도 모든 대학생들이 ChatGPT에 익숙해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만났던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ChatGPT 이야기를 하자 그게 뭐냐는 반응이 대다수였거든요. 반대로 회사에서는 모두가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잘 써서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아직 학생들에게는 변화가 더디게 찾아가고 있구나 싶었는데, 복학해보니 이미 그 사이에 모두에게 퍼져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변화는 수업에도 반영되기 시작합니다.
작년 수업 시간에는 조별발표로 “LLM으로 인한 개인정보 침해 사례와 그에 대한 대응”을 다룬 팀도 있었고, 올해 수업 시간에는 컴퓨터공학 전공 프로젝트 수업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LLM 구현 관련 과제를 학생들에게 요청했습니다.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개발자가 되는게 여전히 유효한 미래일까?
심지어, 그렇게 IT 열풍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컴퓨터공학 전공에 회의감을 가지는 의견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copilot을 넘어 Devin을 만나게 되었고, 단순히 코딩하는 역량을 넘어, 수만 줄의 코드를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시니어 프로그래머의 눈을 요구받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개발자를 시작하라고 해도 되는걸까요? 지금 데빈에게 필요한건 회의를 대신하고 코드를 리뷰하고 인티그레이션할 경험많은 개발자입니다.
지금 시작해도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냐구요?
그건 몹시 힘들 거 같아요. 왜냐면 데빈은 더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장동수 님
“최신 LLM 기술 동향에서 매우 긴 컨텍스트를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거의 완벽해지면서, 왠만한 규모의 애플리케이션의 소스는 통째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요. (...)
만일 그렇게 된다면, 소프트웨어의 기반을 만드는 low-level 엔지니어들에겐 아주 큰 영향은 없겠지만,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일은 아주 크게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김진중 님
물론 아직도 컴퓨터공학과에 대한 선호는 강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발자보다는 다른 길에 뜻을 두고 있어서, 제 진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주변 전공자들이나, 나아가 이제 대학을 입학하는 더 나이가 어린 분들에게는, 제가 고민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점들이 벌써 대두되는 것 같습니다.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해, 경영학을 전공하며 금융권 취업만을 생각하던 제가,
- 주변의 창업을 보고 동아리를 만들며 스타트업 신에 처음 발을 들여서,
- 창업에 도전했다 쓴맛을 보고 창업 외의 길로 눈을 돌리게 되고,
- 병역특례를 하며 클라우드, B2B SaaS, NFT 등 스스로의 다양한 관심사에 놀라기도 하고,
- 스타트업의 겨울을 옆에서 바라보며 사이클을 몸으로 배우고 나서,
지금 이렇게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나는 대표보다는 서포터가 되고 싶구나',
'나는 여러 산업들을 다양하게 알아보는 걸 좋아하는구나',
'나는 스타트업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구나' 등,
스타트업 신의 다양한 뉴스와 이벤트들의 현장에서 제 스스로에 대해 계속 새로운 면면들을 발견해냈습니다.
그덕에 진로의 갈피를 다행히도 지금은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서두에서 공유드린 아티클 외에도, 첫 직장으로 VC를 향하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우려들이 많음에도 말입니다. 제 성향에 잘 맞을 것 같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런 결심을 내렸습니다.
이 글은, 저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 경험담 중심의 매우 특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와 학교 생활을 함께 한 친구들은, 블록체인과 AI의 대두, 스타트업 생태계의 부침과 같이, 비슷한 사회적 사건들을 같이 겪으면서, 저와 같은 파도 위에서 학부 생활을 보냈을 겁니다. 그리고 새로이 열린 다양한 선택지들을 바라보며,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고른 진로 말고도 기존과는 조금 다른 커리어를 걷고 있습니다.
- 미국에서 창업을 하기 위해 도전들을 반복하며 영어 공부에 힘쓰는 동기 A
- 미국에서 딥테크 창업을 하고자 우선 미국 대학원 입시에 도전 중인 선배 B
- 미국 석사를 졸업하고 현지 창업을 시도하다 현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선배 C
- 언젠가 창업 생각은 있지만 네이버에 취업해 실력을 쌓고 있는 동기 D
- 창업을 미리 경험해보고자 스타트업 CEO Staff로 취직했던 동기 E
- 바로 VC 산업에 뛰어들어 심사역으로 취직한 선배 F
참 다양하고도 새로운 길들을 주변에서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더 새로운 선택을 하는 데에 어떠한 이유가 있었는지, 우리가 어떠한 것들을 겪으며 성장해 왔기에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대별 다름에만 우리는 집중하지만,
결국 그 다름은 시대의 계속된 변화에 대한 적응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점점 더 이런 변화는 가속하고 있으니 저보다 더 어린 분들은 더욱더 생경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변화를 언젠가는 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시점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글을 통해 첫 직장을 갖기 전,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경에서 이런 선택을 밟아왔는지’를 정리해보면서, 변화를 다름으로 치부하기보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자는 초심을 잃지 않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 다짐을, 나중에 글을 다시 읽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