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도 돈이 되나요?

춤의 산업화 가능성에 대하여

춤도 돈이 되나요?
💡
숏폼 영상 플랫폼의 성장과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로 대표되는 방송프로그램의 인기를 업고 춤은 그 어느 때보다 대중적인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과연 춤은 단순 문화에서 더 나아가 규모 있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난 글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저는 학창시절 댄동(댄스동아리) 출신이자 오랜 춤 덕후입니다. 2006년 우연히 Justin Timberlake의 MTV 어워즈 퍼포먼스 초반 30초를 보고 춤이라는 콘텐츠에 푹 빠져들게 되었죠.

고등학교 때에는 비보잉, 힙합 등 전반적인 스트릿 댄스로 관심이 넓어지면서 매일 하교한 이후에는 해외 영상들을 찾아보는게 낙이었습니다. 덕분에 아무도 Youtube를 보지 않던 시절부터 Youtube의 헤비 유저였고요.

프랑스산 쌍둥이 힙합 듀오 'Les Twins'

오랜 춤 사랑의 결론은 '춤은 너무 좋은 콘텐츠이지만, 돈이 되지는 않는다' 였습니다. 2013년도 Mnet에서 방영한 댄싱9에는 장르별 최정상급 댄서들이 대거 출연하였지만 대중의 관심도는 정말 미미했습니다. 오디션 프로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대부분 성공하던 시기였는데, 업계 최정상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흥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춤은 산업화 될 수 없는 콘텐츠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런데 2020년에 들어 TikTok에 사람들이 지코의 '아무노래' 안무를 추는 영상이 줄줄이 올라왔고, 2021년에는 '스우파 열풍'이 불면서 대중이 스트릿 댄서들의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하는 (제 입장에서는) 비현실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반가운 감정이 듦과 동시에 과거 스스로 내렸던 결론을 다시 반추해보고자 합니다. 춤은 돈, 즉 산업이 될 수 있을까요?

콘텐츠 산업화의 시작은 '지적재산권'

춤의 산업화 가능 여부에 대한 힌트는 여러 다른 콘텐츠 산업들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큰 규모의 산업을 이룬 콘텐츠 영역은 공통적으로 콘텐츠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지적재산권 수익화에서부터 산업화가 시작됩니다.

음악 산업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연간 음원 시장 규모(IFPI, 2022)

IFPI의 2022년 리포트에 따르면 음원에서 발생하는 매출만 따져도 2021년 약 260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 저작권 개념은 최초로 정립되고 보호되기 시작한지 미국에서는 무려 100년이 넘었고, 한국에서도 음악저작권협회가 1960년대에 설립될 정도로 굉장히 유서가 깊은 영역입니다. 그리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모든 음악은 Physical 매체 (CD, LP, 테이프 등)를 통해 유통되었기 때문에 소비자 판매액 중 정해진 비율만큼 저작권자에게 돌려주는 형태의 지적재산권 수익화 개념이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죠.

하지만 2000년대에 음악을 듣는 매체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physical 시장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고, 디지털로 유통되는 음원에 대한 수익화 및 불법 음원 복제/유통에 대한 제재가 되지 않으며 음악산업은 빠른 속도로 축소되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Spotify를 필두로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광고, 월 정액 등 새로운 BM과 함께 디지털 음원 수익화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했고, 동시에 디지털 음원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법제화가 완성되면서 국내에서는 '소리바다'로 대표되던 무료 불법 음원 유통 플랫폼이 2010년대에 들어서며 소멸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스트리밍 플랫폼이 전체 음악시장의 성장을 견인하여 2021년 음악 산업 전체 규모가 20세기 말을 뛰어넘을 정도로 음악 산업은 제 2의 황금기를 달리고 있죠.

연간 웹툰 거래액 규모

한국이 전세계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웹툰 산업도 좋은 벤치마크가 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웹툰이라는 장르는 PC가 보급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빠르게 등장하였는데, 실제로 유의미한 시장 규모를 이루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웹툰 시장의 주요 유통 플랫폼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각 유료결제 형태인 '쿠키BM'과 '기다리면무료BM'을 도입하고 웹툰 작가들에게 정당한 수익을 돌려주기 시작하면서였죠. 시장은 빠르게 IP 수익화에 성공하였고 순 결제액 기준 2021년에는 국내에서만 1.5조원 규모의 시장 규모를 달성하였습니다.

웹툰 역시 디지털 유통이 주요 채널이 되면서 불법 유통으로 인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는데요, 2016년부터 운영되었던 불법 유통 플랫폼 '밤토끼'가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웹툰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법제화가 진행되면서 2018년 밤토끼를 비롯한 불법 유통플랫폼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폐쇄되었고, 웹툰 작가들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으며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수익화와 보호 조치를 마련한 웹툰 IP는 영상화, 게임화 등 타 콘텐츠 영역으로의 원천 소스 공급을 통한 IP 2차 수익화에 성공하는 등 음악산업과 유사하게 더욱더 몸집을 키울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춤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제가 춤에 푹 빠져 있던 2010년대 초반에는 스스로 안무 창작까지 해내는 아이돌에 대해 대중들이 환호하던 트렌드가 있었습니다. 이에 여러 아이돌 멤버들이 본인 창작 안무라며 대중 매체에서 춤을 선보였는데, 사실은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Quest Crew, Jabbawockeez 등 댄스 크루의 안무를 아무렇지 않게 베끼고 있었죠. (혼자서 씩씩대며 분개하였지만, 대중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스트릿댄스 씬 양지화에 성공한 스트리트 맨 파이터에서 가장 유명해진 '새삥' 안무를 만든 댄서 바타가 아이돌 그룹 ATEEZ의 'Say My Name' 안무를 카피했다는 표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관련해서 안무의 원작자 안제 스크루브(Anze Skrube)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당 사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고, 바타는 전혀 다른 의도와 연결동작을 가진 안무라며 표절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하였습니다.

안무 역시 다른 콘텐츠 분야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국내 기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저작권법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연극 및 무용, 무언극 그 밖의 연극저작물"은 저작권법에서 정하는 저작물의 예시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현행 저작권법상 특정 노래에 맞게 흐름, 분위기 등이 구성되며, 동작이 연결성을 갖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되는 경우에만 보호 받을 수 있기에 동작 단위가 동일한 경우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인정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다시 말해 한 곡의 안무 전체, 무용 작품 전체를 베끼고, 해당 안무를 통해 수익화를 하지 않는 이상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죠. 이미 상당수의 판례가 존재하고, 곡의 유사성, 곡의 상업적 이용, 원곡의 창의성 등 법원의 판단 기준이 존재하는 음원 저작권 보호 사례와는 달리, 안무 저작권에 대한 보호장치는 아직 충분히 법제화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안무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수익화 역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재 안무 IP를 수익화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례는 특정 곡에 대해 안무가가 안무를 창작하여 일회성으로 판매하는 방법입니다. 최근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서는 K-POP 안무를 해외 유명 안무가들에게 의뢰하여 사오는 케이스들이 많아지고 있죠. 과거에 비해서는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점차 발전하는 모양새이지만, 다른 콘텐츠 IP와는 달리 안무는 최초 판매한 이후에 반복되는 공연에 대한 Revenue share 혹은 타인의 카피에 대한 로열티 수취 등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Youtube에 노래 커버영상만 올려도 영상에서 발생한 수익이 원저작권자에게 분배되는 음악 저작권 시스템에 비해서 안무 저작권 관련 인프라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Youtube는 커버 영상에서 발생한 수익 역시 음원수익으로 인식하고 저작권자 및 저작인접권자에게 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무를 최초 매절 형태로 판매하는 것 외에 댄서들이 춤이라는 원천 콘텐츠를 통해 수입을 창출하는 방법은 1) 직접 공연 참여를 통한 출연료 수입, 2) 안무 클래스 운영을 통한 수강료 수입 등 다소 노동집약적인 수단에 그치게 됩니다. 결국 권리가 보호되며, 유통플랫폼 등을 통한 수익창출 개념이 수립된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상당히 manual한 형태의 콘텐츠 유통이 지배적인 상황이기에, 음악 시장이나 웹툰 시장이 보여준 것처럼 빠르게 scale-up할 수 있는 형태의 산업이 형성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무 표절 논란 대중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원작 안무에 대한 금전거래가 일어나는 등 10년전에 비해서는 많이 발전된 부분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춤의 산업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류' 의견을 낼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2020년 TikTok의 국내 성장을 주도한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춤이 단독 콘텐츠로 산업을 형성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TikTok, 인스타그램 Reels, 유튜브 Shorts로 대표되는 숏폼 영상 콘텐츠 중심의 소셜미디어의 성장은 춤과 결부된 주변 시장의 크기를 어마어마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코의 2020년 차트 1위 음원 '아무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TikTok의 '아무노래 챌린지'는 틱톡 플랫폼의 국내 성장과 '아무노래' 음원의 대성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숏폼 챌린지 형태로 보급되는 안무는 1) 결합된 음원 IP의 가치 상승을 유도하고, 2) interaction 이 강화된 형태로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생산을 돕고 있습니다.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음악 비즈니스와 크리에이터 비즈니스가 수혜를 받고 있는 상황이죠.  이러한 댄스 챌린지는 신규 발매 음원 뿐만 아니라 과거 음원 IP를 부활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고, 이는 구보 저작권을 소유한 기업들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2022년 초에는 TikTok에서 Puff Daddy의 1997년 발매 음원 'I'll be missing you'에 맞춘 안무를 바이럴시켜 4050 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노래가 10대에게까지 익숙한 곡이 되었고, Ne-yo의 2007년 발매 빌보드 2위곡 'Because of you' 역시 댄스 챌린지를 통해 역주행 하였습니다.

이처럼 춤은 그 자체로 규모 있는 콘텐츠 IP 산업이 되기에는 아직 어려운 상황임이 맞지만 1) 음원과의 결합, 2) 영상과의 결합, 3) 크리에이터와의 결합 형태로 콘텐츠가 생성되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아우르는 촉매제 역할은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춤을 추는 행위가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굉장히 쉽고 일반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죠. 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직도 규모 있는 산업이 되지 못함은 분명 아쉬운 점이지만, 동시에 10년 후에는 춤 문화가 어디까지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기대 됩니다.

낭만투자파트너스의 다른 글이 궁금하다면 구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