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하고, 대출도 갚아야 하는데, 창업은 언제 해? (인수창업)
현실의 부담 속에서도 창업의 꿈을 이루는 방법인 '인수창업'의 국내외 실전 사례들
결혼도 하고, 대출도 갚으면서, 창업도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
20대 후반 ~ 30대 초반은 창업하기 좋은 나이입니다. 열정이 많아 어려움이 커도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의 일 경험도 있어 시행착오가 적어지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첫 번째 생각이 수렴할 때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의사결정이 고민되는 나이기도 합니다.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하자니 결혼이 마음에 걸리고, 결혼해서 살 집을 마련하려면 대출도 받아야 하는데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우리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최근 업로드된 Elad Gil과 KKR의 공동창업자 Henry Kravis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투자은행을 다니던 32살의 Henry Kravis 또한 KKR 창업 당시 3명의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돈도 별로 없었고, 인수를 위해 모집하려는 $25m 규모의 첫 펀드도 실패했었습니다. 다른 공동창업자인 George Roberts도 3명의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는 동일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8명의 개인에게 각각 $50k를 빌려 5년을 버틴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시도했고, 그 회사는 KKR이 되었습니다.
벤처캐피탈은 투자한 회사 10개 중에서 1개가 100배가 되고, 나머지는 망해도 괜찮은 대체투자 자산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자한 회사들이 100배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래야 10개 중에 1곳이라도 100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창업자들은 인류의 번성이나 수명 연장과 같은 대의를 위해 가족과 자녀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창업자마다 다르겠지만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창업자는 대의를 이루면서 1조원 벌고 싶지만, 50억원만 벌어도 괜찮은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큰 명예와 부까지는 필요 없고, 가족과 개인의 삶을 챙기며 적당히 잘 벌 수 있는 인수창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작년 서치 펀드 글에서부터 결혼과 대출 등 현실적인 고민과 창업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잘하는 오퍼레이터들과 계속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직접 비즈니스를 두 번 키워보니, 연매출 0원에서 50억원 만드는 것보다는 50억원에서 100억원 만드는 게 더 쉬운 것 같습니다.

해외 인수창업 사례 3가지
#01: Jim Ellis와 Kevin Taweel의 Asurion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Asurion은 통신사 등(SKT)과 제휴해 핸드폰의 파손/분실/도난 보험 또는 연장 보증 등의 디지털 기기 보호 및 기술 지원을 하는 연매출 추정 $9b의 비상장회사입니다. 인수창업을 통해 가장 성장한 회사 중 한 곳입니다.

Asurion은 Stanford MBA 동기인 1965년생 Kevin Taweel과 Jim Ellis가 1993년에 졸업하고 창업 아이디어가 없어 당시 교수였던 Irving Grousbeck(2002년 $360m에 NBA 보스턴 셀틱스를 인수해 2025년 $6.1b에 매각)의 조언으로 1~2년 동안 다양한 중소기업을 찾다가 1995년 Road Rescue라는 50명 규모의 자동차 긴급 출동(배터리 점프, 타이어 교체 등) 업체를 $8m에 인수하면서 시작됩니다.
막상 인수한 자동차 긴급 출동 업체는 경쟁이 치열하고 이익이 적은 시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990년대 말 핸드폰 시장이 점점 커짐에 따라 Merrima Group이라는 핸드폰 보험 업체를 인수하고, 기존의 콜센터와 긴급 대응 시스템을 활용했습니다. 이후 기술 지원 솔루션 업체, 수리센터 등 밸류체인에 있는 여러 업체들을 인수했고, 2010년 아이폰의 파손/분실/도난 보험을 책임지면서 폭 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Jim Ellis와 Kevin Taweel은 계속해서 Asurion을 경영하면서 Stanford MBA에서 Search fund 수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02: William Thorndike의 Housatonic Partners
'현금의 재발견'이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William Thorndike는 앞선 Asurion의 창업자인 Kevin Taweel의 Stanford MBA 동창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Kevin Taweel이 인수한 Road Rescue의 인수 자금 $8m에 투자한 Search fund 투자자이기도 합니다. William은 Search fund를 운영하며 또 다른 Stanford MBA 동창인 Karen Moriarty가 Carillon Assisted Living이라는 요양원을 인수하는 것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Carillon Assisted Living의 추정 연매출은 $61m입니다.

인터뷰 'The Power of Long Holding Periods'에 따르면 인터뷰 당시인 2022년 8월까지도 30년 가까이 지분을 계속 보유해왔다고 언급했습니다. '현금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도 여러 CEO를 다뤘던 것처럼, William은 Karen을 적절하게 부채를 활용할 줄 아는 실력 있는 자본 배분가이자, 요양원의 이익률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뛰어난 오퍼레이터라고 평가했습니다.
William은 MBA 전에는 자산운용사에서 투자 업무를 경험해보고 실제 경영을 알고 싶어 출판사에서 직접 운영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MBA를 끝내고 Housatonic Partners를 창업하면서 반복적인 수익을 내지만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재미없는 회사(시골 케이블 방송사, 통신 인프라)를 여러 개 사서 젊은 전문 경영인을 앉히거나, Search fund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지주사 형태로 회사를 키웠습니다. William이 접근한 영역은 대기업이 접근하기엔 너무 작고, 개인이 하기엔 큰 애매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꾸준한 중소 시장이었습니다.
#03: Jim Sharpe의 Extrusion Technology
Harvard Business School에서 다뤄지는 케이스 스터디인 Extrusion Technology는 Havard MBA를 졸업하고 인수 창업을 하려다 실패한 Jim Sharpe가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근무하고 나서 다시 인수창업을 한 사례입니다. 당시 커리어와 가정 생활의 균형을 찾고 싶어 대기업을 퇴사한 Jim은 몇 가지 조건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매물을 탐색했습니다.
(1) 문제가 있어 가격이 낮을 것
(2) 자산이 있어 차입이 가능할 것
(3) 100% 단독 소유
그렇게 Jim은 1987년 노조와 싸우고 있는 Massachusetts에 있는 연매출 약 $3.5m 규모의 알루미늄 부품 제조 공장을 피인수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한 대출과 매도가 돈을 빌려주는 형태의 금융 등 최대한 차입하여 자기 자본 $100k로 아내와 함께 인수(아내도 Harvard MBA 출신...)했습니다. 이후 Jim은 무리한 외형 성장 대신 현금흐름과 부채 상환, 재고 관리에 집중하면서 현장 직원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제품 리드타임을 줄임과 동시에 기존 알루미늄 부품 대신 통신 장비용 알루미늄 패널을 제작해 고부가가치의 완제품 제공 기업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인수 6년 만에 부채를 전부 상환한 Jim은 이후 단가를 맞추기 위해 중국에 직접 공장을 세워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가족과의 균형이 깨지자 2008년 사모펀드에 매각했습니다.
인수창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Jim의 홈페이지에서 인수창업과 관련해 작성된 수십개의 아티클 정독을 추천드립니다.

한국으로 확장한 Constellation Software
그 유명한 Warren Buffett도 섬유 회사 Berkshire Hathaway를 인수한 다음 기존 사업을 축소시키고 정리한 자산으로 보험 업체들을 거듭 인수해 Float(지급 준비금)를 쌓아 지금의 Berkshire Hathaway 모습을 갖춥니다. Buffett이 좋은 주식을 사서 영원히 보유한다면, Constellation Software를 창업한 Buffett의 광팬 Mark Leonard는 좋은 소프트웨어 회사를 사서 영원히 보유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기술 분야의 Berkshire라고도 불리는 캐나다 소재의 연매출 $10B 규모 Constellation Software를 창업한 Leonard는 VC로 일하면서 VC들이 안좋아하는 시장 규모가 작고 성장이 느린 회사들에게서 기회를 발견합니다. 한 번 들어온 고객이 이탈하지도 않고, 매년 현금도 꼬박꼬박 들어오는데, 크지 않은 특정 시장(헬스장 회원 관리, 지하철 운영 소프트웨어 등)을 독점하는 패턴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남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고 지루한 시장에서 직접 개발하지 않고 이미 검증된 소프트웨어를 인수해 번 돈으로 다시 다른 소프트웨어를 인수하는 전략으로 500개가 넘는 회사를 인수하며 거대한 소프트웨어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Constellation Software가 2020년대 초부터 한국에 진출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Constellation Software는 자회사인 Aquila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대 AI시대에 열심히 구글링 해보면 아래와 같이 국내에서 230개 이상의 섬유업체에 ERP를 제공하는 1994년 만들어진 연매출 20~30억원 규모의 회사를 검토한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국내 시장도 조금씩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인수창업 사례 2가지
#01: 윤윤수의 FILA
이탈리아 브랜드 FILA가 미국 사업을 하는 과정을 도운 인연으로 FILA가 한국 진출할 당시 첫 지사장이 된 윤윤수 회장은 설립 초기부터 폭발적인 매출을 내며 이후 6년 간 내년 50% 이상의 성장을 꾸준히 기록했습니다. 이후 1990년대 말 FILA 본사의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FILA의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가 FILA 매각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윤윤수 회장은 FILA 코리아의 매출액과 본인의 전재산, 그리고 임직원으로부터 받은 돈, FILA 브랜드 로열티를 담보로 차입한 자금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FILA 본사를 인수합니다. 인수하고 나서 FILA는 계속 성장해 2007년 모든 부채를 해결하고 FILA를 완전 소유하게 되어, 2024년 기준 연매출 9,17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FILA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11년 미래에셋과 함께 골프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쿠쉬네트 홀딩스를 5,200억원에 인수해 뉴욕에 상장시켰고, 그 결과 FILA 홀딩스는 2024년 기준 연매출 4.3조원, 영업이익 3,608억원을 기록하는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02: 리버티랩스와 이든푸드서비스

리버티랩스는 앞서 언급한 Constellation Software를 벤치마킹해 한국의 중소기업 승계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최근 130억원 규모의 Pre-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위탁급식 서비스 기업 '이든푸드서비스'를 인수했습니다.

1999년 설립된 이든푸든서비스는 25년 넘게 관공서와 프로 스포츠 구단을 대상으로 급식을 제공해왔으며, 급식에서 확장해 위생 관리/식자재 관리/물류 시스템 등을 관리해줘 고객사의 인력 부담을 줄여왔습니다. 2024년 기준 연매출 31.5억원을 기록한 이든푸드서비스의 윤주현 창업자는 창업자의 고령화와 승계 문제로 인해 고민하던중 리버티랩스와 공인회계사인 박형준 대표를 만나 사업을 매각했습니다.
아직 인기없는 인수창업. 한국도 언젠가는?
앞서 해외의 사례를 보면 CEO가 되고 싶은데 창업 아이템이 고민되면 인수창업을 선택하는 미국과 다르게 한국의 사례들은 다니던 회사가 망하게 되거나 어려워졌을 때 인수를 하는 MBO 형태(STX그룹 강덕수 회장, MCM 김성주 회장)가 주입니다. 1900년대 후반부터 MBA에서 Search fund나 Entrepreneurship Through Acquisition을 가르친 미국은 그 방법으로 성공한 창업가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새로운 젊은 창업가들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인수창업이란 단어가 익숙치 않으며, 커뮤니티도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인수창업은 결혼도 하고, 대출도 갚으면서, 창업도 할 수 있는 좋은 솔루션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고민과 창업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20~30대의 훌륭한 인재들에게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교류했던 진양님은 이제 인수창업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다양한 인수창업 전략(AI를 활용한 Roll-up 등)과 함께 인수창업을 잘하기 위한 핵심 역량과 어떤 페르소나가 잘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인수창업과 관련한 커피챗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