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그 무역상이 세계 최대 규모의 엑셀러레이터가 되다?!

창업자의 스토리에서 유추해보는 Plug And Play가 세계 최대 스타트업 플랫폼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러그 무역상이 세계 최대 규모의 엑셀러레이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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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innovation의 글로벌 선두주자 Plug And Play Tech Center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란 대기업이 외부와 협업하여 새로운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등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대기업들이 전략적인 목적을 갖고 공격적으로 CVC(Corporate Venture Capital)을 런칭하거나, VC 펀드에 출자를 하면서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오픈 이노베이션 개념이 흔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돕는 플레이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죠.

Plug and Play 소개 영상

Plug and Play는 스타트업/대기업/벤처캐피탈의 중심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을 운영하는 실리콘밸리 기반의 엑셀러레이터입니다. 2021년에는 한국 지사를 열고 국내 대기업 및 스타트업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Plug and Play의 창업자 사이드 아미디(Saeed Amidi)의 스토리는 정말 흥미로운데요, 사이드 아미디는 어떻게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플랫폼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우연히, 그러나 전략적으로

Plug and Play 의 창업자 사이드 아미디

사이드 아미디(Saeed Amidi)는 이란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그의 아버지 아미르 아미디는 가족 사업으로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서 동양풍 러그를 팔았습니다.  아미디는 어린 시절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소비재 무역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으나, 냉전기 이란 혁명으로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교역이 끊어지면서 미국 내에서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1979년, 멘로 대학(Menlo college)에 다니던 그는 팔로알토의 한 거리에서 생수를 패키징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생수 사업으로 괜찮은 성과를 낸 사이드는 연달아 형제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쇼 미디어 프로덕션 사업도 전개했죠.

Plug and Play가 시작된 165 University Avenue

닷컴 버블이 일던 20세기 말 그는 생수 사업을 운영하던 그 빌딩의 사무실 일부를 작은 테크 스타트업에게 임대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테크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단, 그의 빌딩이 스탠퍼드 대학교 바로 앞에 있었을 뿐이죠.

그의 빌딩에는 십수년 후 '빅테크 기업'이 되는 스타트업들이 들어찼습니다. Google은 직원이 6명이던 시절 들어와 60명의 규모로 성장할 때까지 사이드의 건물에 있었습니다. Google이 나가고 나서는 피터 틸(Peter Thiel)이 Paypal의 초기 직원들과 함께 입주하였고, 최초의 스마트폰 T-mobile Sidekick의 제조사인 Danger와 컴퓨터 주변기기 제조사 Logitech이 들어왔습니다.

구글의 초기, 165 University Ave 앞에서

사이드가 임대사업을 하던 초기부터 이들이 유망한 기업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빌딩에 들인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사이드의 빌딩 출신 스타트업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The Lucky Building'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창업 붐이 일면서 사이드 뿐만 아니라 Bay area 지역의 많은 건물주들이 향후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에게 사무실을 제공하기도 했죠.

사이드가 다른 건물주들과 명확하게 달랐던 점은 Paypal과 Danger에게 사무실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투자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이드는 임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러그 비즈니스 역시 운영하면서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는데, 그들의 눈에서 굉장한 열정을 느낀 그는 일부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창업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사이드는 창업자의 열정과 의지만 보고 기업의 성장성을 충분히 판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러나 본인이 팀의 기술력을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이드는 주변에 있던 VC들에게 창업자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Sequoia에게 Dropbox를 소개하였는데, Sequoia가 엄청나게 매료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투자했습니다. 또 Lending club을 Norwest Venture Partners에게 소개하였는데, 마찬가지로 파트너 Jeff Crowe가 푹 빠지는 모습을 보고 투자하게 되었죠.

'운'이 전부일까?

운이 좋아 훌륭한 창업자를 만나고, 다른 VC를 따라 투자하여 성공했다니.. 사이드 아미디의 스토리가 너무 naive한가요? 그는 여전히 각종 강연에서 '운은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그가 벤처 투자사를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모든 사업을 전개한 것도 아니고, 그 때의 구글이 지금의 구글이 될 것을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이드 아미디의 Plug and Play 창업 스토리를 보면 그의 운 사이 사이에 전략적 디테일들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죠.

저는 VC를 '플랫폼 비즈니스'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VC는 필연적으로 업을 전개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정책 기관 출자자, 민간 기업 출자자,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창업자, 스타트업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종사자, 엔젤투자자, 벤처캐피탈 심사역, 각종 산업 도메인에서 일하는 현업 전문가, 창업을 꿈꾸는 학생 등. 모두 다 벤처 시장의 플레이어들이지만 각자의 이해관계는 다르기 마련이죠.

흔히 VC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지닌 분들은 VC의 전문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곤 합니다. VC 심사역들은 여러 사람을 만나 얇게 많이 알고 있을 뿐, Vertical 전문 지식이 없다는 평이죠. 하지만 저는 VC의 전문성이 바로 '횡적으로 넓게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1. 스타트업 업계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나 넓은 시야를 갖는 것
  2. 각자의 니즈를 이해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것
  3.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것

이와 같은 플랫폼 역할을 잘하는 것이 VC의 정수이자,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전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드 아미디가 비록 투자자의 포지션에서 자금 운용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VC스럽게' 움직이는 방식을 알고 있었던 거죠. 사이드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에는 운이 크게 작용했을 수 있지만, 그의 결과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엄청난 입체적 사고능력과 매칭 역량이 있었을 것입니다.사이드 아미디는 실제로 "Hottest Matchmaker"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이 둘이 같이 일하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요? 새로운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을까요? 뭔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곤 합니다."

판을 키우다

사이드는 VC와 스타트업을 하나씩 매칭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스타트업 업계와 기존 산업을 매칭하는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기치로 설립된 Plug And Play 는 단순한 엑셀러레이터에서 나아가 '세계 최고의 이노베이션 플랫폼'을 지향합니다.  Plug And Play는 스타트업/대기업/벤처캐피탈을 각기 고객으로 삼고, 스스로를 'All-in-One 솔루션'으로 지칭합니다.

  1. 스타트업에게는 :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 각종 온오프라인 이벤트, 사무실 및 기기 지원, 글로벌 투자 유치 및 사업 협력 지원
  2. 대기업에게는 : 스타트업 소개를 통한 POC, 투자, 인수 등 지원, 기업 간 네트워킹
  3. 벤처캐피탈에게는 : 공동 투자 기회 제공, 후속투자 연결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Plug and Play는 실리콘밸리 본사를 기점으로 전세계에 35개 지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20개 산업을 분류하여 300개가 넘는 글로벌 대기업을 각 산업별 파트너로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Brand and Retail' 기업 파트너로는 코카콜라, P&G, VISA, 까르푸 등, 'Mobility' 기업 파트너로는 벤츠, 르노, 포드, 토요타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Plug and Play는 본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소싱된 스타트업을 정기적으로 글로벌 대기업에 소개하고 협업 및 투자를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업무를 대행하는 역할이고,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사업의 성장속도를 가속화 할 기회를 찾아주는 거죠.

디트로이트 Auto show에서 피칭하고 있는 Plug and Play Mobility 스타트업

또한 단순히 기업들에게 연결하는 것 뿐만 아니라 Plug and Play 역시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집행하고, 파트너 VC에 소개하여 FI 투자를 연계하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사업적 접점을 찾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금 유치까지 가능한 효과를 누립니다.

사이드의 Plug and Play 창업기는 언뜻 우연과 운으로 점철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Plug and Play의 전략적 방향성과 현재를 보면 그 사이사이에는 운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디테일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과연 VC 투자는 결국 운이 전부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