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이 음악 산업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방법

틱톡은 음악의 리스너를 크리에이터로 바꾸고 있다. 이를 통해 틱톡은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틱톡이 음악 산업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방법

최근까지 국내에서 틱톡은 '개인정보 팔리는 중국 앱'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의 잼민이 놀이터' 정도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같은 기간 틱톡은 글로벌 음악 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죠. 틱톡은 어떻게 음악 산업을 바꾸고 있을까요?

[Agenda]
- 음악산업의 변곡점
- Phase1) 낭만 가득했던 피지컬 유통 시절
- Phase2) 디지털 음원으로의 혼란스러운 전환
- 좋든 싫든 틱톡은 먹힌다!
- 음악의 사용 맥락 바꾸기: Community-driven Music
- 음악업계에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음악 산업의 변곡점

틱톡이 음악산업을 바꾸는 방식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수십년간 음악산업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콘텐츠 산업의 지적재산권을 다룬 지난 글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음악 산업은 음원 권리의 보호 및 수익화 트렌드, 그리고 음악 유통 및 홍보 방식의 변화에 따라 암흑기와 황금기를 오갔습니다.

연간 글로벌 음원 시장 규모(IFPI,2022)

Phase 1) 낭만 가득했던 피지컬 유통 시절

1990년대 저희 아버지는, 대학시절 락밴드 출신 답게, 집에서 Bon Jovi와 Scolpions의 락발라드 LP 앨범을 틀어놓곤 하셨습니다. 2001년에 친형과 같이 간 교보문고에서는 인생 첫 카세트테이프로 크라잉넛의 명곡 '밤이 깊었네'가 수록된 <하수연가> 앨범 테이프를 사주셨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음원의 권리가 인정되고 음원을 담을 수 있는 피지컬 유통 매체들이 발명되던 20세기 초중반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수 십년 동안, 음악은 LP, CD, Tape로 대표되는 피지컬 매체를 통해 유통되었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다시피, 2000년까지만 해도 피지컬을 통해 유통되는 음원만 정확하게 수익화할 수 있는 저작권으로 인정되었죠.

그에 따라 음악산업의 Value chain은 자연스럽게 피지컬 매체의 유통을 중심으로 구축되었습니다. 음원 유통의 말단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 접점을 가지고 있던 창구는 바로 동네 레코드샵이었습니다. 음악 애호가들은 레코드샵에서, 마치 서점에서 책을 고르듯이, 음악을 듣고 앨범을 사갔습니다.

현재까지도 전세계 음원 유통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메이저 3사(Universal Music, Warner Music, Sony Music) 역시 과거에는 모두 이러한 로컬 레코드샵으로의 오프라인 유통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음원의 유통 매체가 피지컬만 존재했기에 현재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단순한 유통구조를 갖고 있었던 셈이죠.

이러한 구조 안에서 아티스트가 본인의 음악을 파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전국에 방영되는 TV 혹은 라디오 매체에 출연하여 음악을 홍보하고, 팬들이 레코드 샵에서 앨범을 찾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상당히 중앙화 되어 있는 네트워크에 잘 올라타는 것이 핵심 역량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주류 음악 업계에서 벗어나 있는 아티스트들은 지역 클럽에서 공연을 하거나, 동네 레코드샵에 찾아가 본인들의 앨범을 진열해서 팔기도 했습니다.

Phase 2) 디지털 음원으로의 혼란스러운 전환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2000년대 중반에는 피지컬 음반 유통이 쇠퇴하면서 음악산업은 큰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사람들이 음악을 안 들었던 것은 아니죠. 워크맨과 CD 플레이어를 거쳐 MP3 플레이어로 재생 매체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디지털 음원을 주요 음원 소비 방식으로 택하게 되고, 2010년 이전까지 디지털 음원은 대부분 불법적으로, 그리고 무료로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소리바다가 대표적인 불법 음원 유통 사이트였고,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사이트가 횡행하면서 음악 산업은 암흑기에 접어드는 듯 했습니다. 음원을 제작하는 아티스트와 제작사, 그리고 유통사 모두 돈 버는 방법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요.

Spotify 의 창업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플레이리스트'는 불법 음원 유통이 만연했던 시절 음악산업 내부의 이야기를 잘 들려줍니다

그러나 2000년대 말부터 디지털 음원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 방안이 제도화되면서 불법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가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폐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시에 스포티파이를 중심으로,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음원 유통 방식과 수익화 모델이 발명되고 음악 산업은 2010년대에 들어서며 극적으로 턴어라운드 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음원 유통 Value chain 역시 피지컬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크게 전환되었습니다. 유통사들의 비즈니스는 로컬 레코드샵에 음반 카탈로그 장사를 하던 방식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에 디지털 음원을 공급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죠. (말이 '유통'이지, 전혀 다른 형태의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체질 혁신에 성공하였다는 점이 생각할 수록 대단합니다)

동시에 여러 미디어들이 성장하면서 음악을 홍보하고 파는 방식 역시 디지털 유통 value chain에 맞게 굉장히 다양해졌는데, 그 중 재밌는 것이 스트리밍 플랫폼의 성장에 따른 'Chart-in' 혹은 'Playlist-in' 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악의 유통 성과를 집계하여 보여주는 것이 음원 차트이지만, 거꾸로 음원 차트에 빠르게 입성 시키고 이를 통해 음원의 성과를 boosting 시키는 방법이 생겨난 것이죠. 또한 스포티파이와 같은 플랫폼은 차트가 존재하지 않고 플레이리스트 추천 방식으로 음원을 유통시키는데, 유통사들은 소비자에게 많이 노출되는 플레이리스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극단으로 갔을 때에는 사재기와 같은 부작용이 동반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음악 산업 밸류체인의 말단에서 음원을 유통하는 매체가 변모와 함께 음원 유통의 Value chain 역시 변화합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잘 팔리는 음원을 제작하고 마케팅하는 방식도 새롭게 발명되죠.

이러한 생각의 틀을 갖고 현재 음악산업을 바라보면, 어쩌면 음악산업은 세번째 phase에 도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촉매제가 바로 숏폼 영상 플랫폼 '틱톡'입니다.

좋든 싫든 틱톡은 먹힌다!

국내에서 틱톡은 꽤나 미운털이 많이 박힌 플랫폼입니다. 일단 중국의 Bytedance가 모회사이기에 개인정보 이슈가 있을 수 있다는 감정이 틱톡에 흐린 눈을 뜨게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또한 소위 '틱톡 감성'이라는 말이 존재하듯이, 일반적인 성인 대중의 취향에는 안 맞는 영상이 대부분인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음악 산업으로 눈을 돌리면 틱톡은 절대 Niche한 문화 만을 대변하는 플랫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는 틱톡을 '글로벌 개인정보 갈취 숏폼비디오 플랫폼'으로 소개하네요

EF Ventures를 소개한 글에서 틱톡 음원 마케팅을 통해 빌보드 1위를 차지한 24kgoldn의 'Mood'를 잠깐 언급했었죠. Mood와 유사하게, 틱톡을 통해 바이럴 된 곡 중 메인스트림 음악 차트에서 탑에 오른 곡은 최근 들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래 곡들이 틱톡 바이럴을 메인 전략으로 써 빌보드 1위를 달성한 곡이고, hot 100차트 전체를 보면 훨씬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팝에 익숙치 않은 분들도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은 있는 곡'일 것 같습니다.

  • 'Mood', 24kgoldn
  • 'Say So', Doja Cat
  • 'Savage Love', Jawsh 685 x Jason Derulo
  • 'Savage', Megan Thee Stallion

음악의 사용 맥락 바꾸기: Community-driven Music

틱톡이 음악 산업 전반을 뒤흔든 가장 큰 사건을 'Community-driven 음악의 탄생'이라 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지컬 형태로 음악이 유통되던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중심으로 산업이 변모한 시점에서도 음원은 제작사에서 유통사를 거쳐 리스너들에게 일방향적으로 유통되었습니다. 다만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청취자들이 좋아하는 음원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집계하면서 대중의 취향이 조금씩 더 반영되었을 뿐이죠.

틱톡은 음악의 리스너를 크리에이터로 변모시키며, 음악의 사용 맥락을 리스너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뮤지션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도요. 리스너들은 음악을 단순히 듣는 행위를 넘어 틱톡의 '숏폼 영상 제작 툴'을 통해 음악의 사용 맥락에 대해 결정하게 됩니다. 틱톡의 영상 제작 툴은 크게 1) 배경 음악 설정, 2) 필터 설정, 3) 편집 기능 설정을 유저에게 선택하게 하는데,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유저 행동이 됩니다. 각 음악에 맞는 안무를 추는 '틱톡 댄스 챌린지'가 제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음악과 영상의 합이겠지만, 춤이 아니어도 음악과 영상의 포맷을 결부시키는 사례를 틱톡에서는 정말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빌보드 hot 100 차트 58위까지 오른 Armani White의 'Billie Eilish' 음원을 사용한 챌린지. 유저들이 음원을 사용하는 방식은 춤에만 그치지 않는다.

재밌는 춤 혹은 영상 포맷을 발견한 크리에이터들은 위 영상처럼 같은 음원을 활용하여 동일한 포맷의 영상을 제작합니다. 그러면 해당 음원은 크리에이터의 피드를 타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죠. 또한 틱톡에서 만들어진 숏폼 영상이 유튜브 Shorts와 인스타그램 Reels로 복사되면서 다른 플랫폼의 유저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전파됩니다. 여기까지 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본인의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에 음원을 넣고, 차트에서 상단에 위치한 음원을 보면 TV와 라디오에서도 그 음원을 틀기 시작합니다. 음원의 유통이 Top level-driven한 방식에서 Community-driven한 방식으로, 과거와는 정반대로 흐르는거죠.

음악 업계에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다시 얘기하면 틱톡은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뮤지션, 레이블, 유통사, 마케터 etc)에게 기존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시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음악 업계에서 가장 먼저 변화하고 있는 영역은 단연 마케팅입니다. 음악 마케터들이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 소비재의 '인플루언서 광고', '인플루언서 커머스'와 결이 맞닿기 시작하는 듯 하네요.

  • 메가 크리에이터 대상 프로모션 딜 진행 : 영상 하나 당 최대 수천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면서 크리에이터들이 본인들의 음원을 사용한 영상을 제작하게끔 합니다.
  •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캠페인 진행 : 일부 마케터들은 비용 효율의 관점에서 메가 크리에이터가 아닌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다수를 대상으로 유사한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 인플루언서가 아닌 유저들에게 음원 활용 오픈 : 인플루언서가 아닌 유저들이 자유롭게 음원을 사용하여 영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음원을 오픈하는 것 역시 바이럴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 틱톡 뮤직 챌린지 진행 : 개별 크리에이터가 아닌 틱톡 플랫폼과 제휴하여 뮤직 챌린지 프로모션을 진행합니다. 국내에서는 지코의 '아무노래'가 대표적이었죠.

또한 틱톡은 프로모션 채널일 뿐만 아니라, 음원 저작권자 입장에서 수익창출 채널이기도 합니다. 음원이 영상에 삽입될 경우 Synchronization 형태로 저작권 수입이 생기는데 이로 인해 유통사에서는 틱톡에서의 음원 데이터를 트랙킹 하기 시작합니다.

(깨알 홍보) 크릿벤처스의 포트폴리오 'Chartmetric'은 틱톡을 포함하여 모든 플랫폼에서의 음원/아티스트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SaaS 툴을 개발 및 운영합니다

이렇게 틱톡이 마케팅과 유통에 깊게 침투하자, 자연스럽게 음원의 제작 단까지 고민이 내려오게 됩니다. 예전에는 만들어진 음악을 틱톡에 잘 유통시키는 방법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애초에 틱톡에 어울리는 음원을 제작하기 시작한거죠. 캐나다 래퍼 Tiagz는 4.2M의 팔로워가 있는 자신의 채널에 틱톡 밈이 될 수 있는 음원을 올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빌보드 1위 가수 Post Malone이 유튜브에 자작곡을 올리면서 성장한 것처럼, 틱톡이 새로운 뮤지션의 데뷔 채널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동일한 이유로 음반 레이블에서 아티스트 발굴 및 음반 기획을 담당하는 A&R (Artist & Repertoire)들은 트렌디한 뮤지션과 음원을 찾기 위해 틱톡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해외 음악업계에서는 벌써 'TikTok Fatigue'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음악 제작에만 집중하던 뮤지션들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틱톡에서 어떻게 바이럴 시킬지 고민해야 하니 굉장히 지친다는 불만이 쌓이는거죠. 하지만 과거를 생각해보면, 피지컬에서 디지털 형태로 음원의 유통방식이 변화하던 시점에 뮤지션들도 비슷한 형태의 불만을 제기하였으나, 라이브와 피지컬 유통만을 고집하는 뮤지션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듯 합니다.

틱톡은 그냥 단순히 흘러가는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할까요? 혹은 음악산업의 제작과 유통 프레임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역사적인 분기점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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