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투파를 AX하다

글을 AI로 쓰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낭투파를 AX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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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사랑하는 골칫덩어리, 낭투파

낭투파는 참 묘합니다. 'VC 산업도 혁신할 수 있다'라는 문장 하나 걸고 치기 어리게 시작한 이 집단은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구독자는 6천명에 달하고, 그 동안 낭투파의 이름으로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난 분이 거의 1천명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지만 동시에 '왜 이렇게 활동을 안하냐'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문제는 '안하고 싶어서 안하는게 아니다.'입니다. 열심히 할 수록 득 되는 것을 알지만, 글 하나 깎는 데 실제로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하고, 수 천자를 쓰고도 발행하지 못한 글이 드래프트 창에 더미로 쌓여있습니다. 속칭 토 나오는 작업입니다. 저희 멤버들 모두가 깊은 애정을 갖고 있지만 누구의 본업도 아닌 점도 문제입니다. 지속하고 싶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구조입니다.

그래서 낭투파를 AX 해보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글쓰기 자동화 같은 건 아닙니다. 다른 글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드리고 공부하고 있는, 'AI native 기업'을 직접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낭투파 AX 프로젝트'의 첫번째, 김서진님과 진행한 AI 기반의 리브랜딩 이야기입니다.

낭만투자파트너스 Brand Identity

우리를 늘 우리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속력의 시대

한 때 스타트업 씬에서 '스피드'보다 귀중한 가치는 없었습니다. 고민하고 정리할 시간에 더 빠르게 움직이고, 부딪치고, 피드백을 가져오는 것. 손이 빠른 사람이 가장 높은 몸값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무언가를 할 때 '고민 좀 해봐야' 하는 사람들은 냉정하게 말해서 그렇게 가치가 높지 않았습니다.

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길 유일한 방안이 속력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자원, 네트워크, 심지어 지능과 성실함까지도 대기업이 스타트업보다 못할 이유가 거의 없었거든요.

린스타트업 문화는 (의도가 그렇지는 않더라도) 속력에 가중치를 부여했다

그런데 지난 몇개월 사이 모두에게 엄청나게 빠른 속력 머신이 쥐어졌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 중 개발, 리서치, 정리를 비롯하여 어디서든 AI를 안쓰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실까요? 어느새 속력은 범용재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엄청난 가속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죠.

다시 되짚어 이야기하면 무거워서 속력을 낼 수 없었던, 그 유일한 이유로 인해 스타트업이 이길 가능성이 있었던 대기업에서도 스타트업만큼의 속력을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조직이 큰 조직에 비해 갖는 메리트는 없어지고 만 것일까요? 속력 이후의 게임은 뭘까요?

'속력'이 아니라 '속도'

속력이 빠르기만 의미하는 것이라면, 속도는 방향과 빠르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실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원래부터 속력이 아니라 속도였습니다. 기업은 자연인이 혼자 달성할 수 없는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든 법적 허구입니다. '특정 목적'이 없으면, 그냥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제는 '회사' 혹은 Company라는 단어는 사양되지 않을까요?)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업의 방향을 18개에서 4개로 줄인 것이다. 그리고 애플은 부활했다.

지금 다니시는 기업의 방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회사의 미션과 비전을 찾아보세요. 찾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입사할 때 받은 책자에 써있을 수도 있고, 벽이나 화면 보호기에 걸려있을 수도 있고, 아무데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옆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너 우리 회사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회사인지 알아?' 만약 대답이 제각각이라면, 그리고 웹사이트에 써있는 미션, 비전과 전혀 다른 메시지가 나온다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 하며 고민이 좀 들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물리법칙에서 경영 기법을 빌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빌려온 법칙 중 한 가지는 Vector Alignment, 방향 정렬입니다. 어린 시절 과학시간에 배운 합력의 개념과 같습니다.

조직원 열 명의 벡터가 제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면, 아무리 각자가 빨라도 합력은 0에 수렴합니다. 반대로 열 명이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면 개인의 힘이 약할지라도, 합력은 극대화됩니다. 방향이 틀린 상태에서 속력을 올리면 더 빨리 틀린 곳에 도착할 뿐이죠.

AI 에이전트가 조직 곳곳에서 일하는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 선명해집니다. 사람에게는 정신교육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에이전트에게는 방향이 코드로 주입되어야 합니다. 철학이 문서화되어 있지 않으면 에이전트는 제각각으로 움직입니다. 방향 셋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직접 찍은 LA 테슬라 스테이션의 벽면. "햄버거 먹는 사람들도 방향을 맞추십쇼!"

낭투파는 무슨 생각을 하나?

낭투파의 AX로 돌아오겠습니다.

낭투파 AX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Claude Code 결제(물론 이것도 했습니다)나 AI 스터디(물론 이것 또한 했습니다)가 아니라, 철학 정비였습니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 규칙을 정하고, 글을 쓰고, 이벤트를 기획하는 모든 일 위에 '우리는 뭐하는 놈들이지?'라는 질문에 대한 정교한 대답이 필요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은 지난했지만, 사실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20대 VC 출신들로서 낭투파를 시작한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다른 것보다 웹사이트 가장 아래에 이미 적혀 있었거든요.

조금 더 가다듬어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벤처캐피탈은 왜 벤처하지 않을까?'라는 병아리 시절의 의문은 '너네가 캐피탈을 몰라서 그래'라는 의뭉스러운 문장으로 일축당하곤 했는데요, 몇 살 더 먹은 지금도 여전히 그 문제를 풀어보려 합니다.

Venture Capital 말고 Capital Venture

그런데 저희끼리는 이미 통하고 있는 생각이어도, 마지막 하나가 안 따라왔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고객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문제였습니다. 로고, 웹사이트, 글의 썸네일과 삽화, 발표 자료, 소셜미디어 이미지 등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요소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말은 정렬시키려 정말 노력했지만, 일관되면서 개성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감각없는 사내놈들 모여서 하느라 그냥 객관적으로 안 예쁜 것은 덤입니다.

브랜드는 정렬의 최종 시험이다

잘 쌓은 철학 위에 브랜드를 만드는 것(브랜딩)은 왜 중요할까요? 결국 고객이 만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브랜드의 표현입니다. 철학을 전달드리려는 노력도 정말 많이 하지만 수 시간의 말과 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잘 구축한 브랜드는 일순간에 우리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더욱 많은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정렬되지 않으면 매번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낭투파가 뭐하는 데예요?"에 멤버마다 다른 대답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래서 겁나 많이 싸웠습니다) 행사 하나 기획할 때마다 디자인을 새로 고민해야 합니다. – 사실 그래서 많은 경우 안해버렸습니다.

이 반복 비용이 보이지 않게 조직을 갉아먹습니다. 앞서 말한, '토 나오는 작업'의 상당 부분이 사실 이 정렬 부재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브랜드가 정렬되면 설명이 필요 없어집니다. 로고를 보면 톤이 느껴지고, 웹사이트를 보면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있고, 어떤 채널에서 만나든 같은 낭투파로 읽힙니다. 브랜드의 표현이 낭투파다움 그 자체가 됩니다.

그러면 멤버는 설명 대신 본질적인 일에 시간을 쓸 수 있고, 고객은 신뢰를 쌓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브랜드 정렬은 예쁘게 보이려는 게 아닙니다. 조직의 마찰을 줄이는 인프라라고 봅니다. 내부적 마찰뿐만 아니라 외부적 마찰까지도요.

AI Native한 브랜딩은 어떤 모습일까?

"로고 만들어 주세요", "PPT 템플릿 만들어주세요" 이런건 여러번 해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을 벌릴 수록 점점 의미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AI Native한 광고 대행사(혹은 AI들이 운영하는 광고대행사😺)를 만들고 계신 김서진님과 함께 AI 기반의 리브랜딩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로고나 템플릿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시스템'이었습니다.

BRND - Branding & Marketing Agency
브랜딩과 마케팅의 통합을 통해 브랜드의 시작과 성장을 돕습니다.

언제나 재현가능하게

전통적인 브랜딩은 디자이너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카드뉴스 하나, 발표 자료 하나를 만들 때마다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거나, 최소한 감수해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바뀌거나 빠지면 톤이 흔들립니다. 낭투파처럼 전담 디자이너가 없는 조직에서는 매번 누군가가 canva를 열고 감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결과물은 당연히 제각각이었고요.

AI 브랜드 시스템은 '감각을 코드화'하는 과정입니다. 모든 브랜드 비주얼이 감각과 느낌이 아니라 정량화된 규칙과 논리를 통해서 만들어지게 합니다. "신뢰를 주기 위해 일러스트는 선이 뚜렷하고 직선적이어야 한다.", "노출되는 공간과 고객에 따라서 사용되는 컬러의 톤과 종류도 정해져야 한다." 와 같은 제약 조건들이 명확하면 AI가 재현할 수 있습니다. 누가 프롬프트를 넣든, 언제 만들든, 같은 톤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스케일에 대비하라

AI 시대의 브랜드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는 접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속력은 범용재가 되었거든요. 생각의 비용이 너무 낮아졌기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무엇이든 실행에 옮겨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레터 썸네일, 소셜미디어 이미지, 행사 포스터, 파트너 제안서, 뉴스레터 헤더, 하나하나 디자이너에게 맡기면 비용과 시간이 접점 수에 비례해서 늘어납니다. 혹은 일관성을 포기하고 실무자가 마구잡이로 만들어야 하겠죠. 그런데 시스템이 있으면 접점이 열 개가 되든 백 개가 되든 한계 비용이 거의 0입니다.

철학의 정렬이 "방향을 맞추는 것"이라면, 브랜드 시스템은 "그 방향을 누구든 반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렬을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거죠.

서진님과 구축한 낭투파의 브랜드 시스템을 사용해서 열심히 딸깍 딸깍하며 아래와 같은 소재를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 넣었던 삽화들도요.

브랜딩도 복리로

지난 글에서 AI native 기업의 본질은 '복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복리적 성장의 재미있는 점은 끝이 없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의 기업은 복리 기계인가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400년 전 발명된 ‘기업’이다

낭투파의 브랜딩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여전히 "예쁜 결과물"을 뽑아내는데 애먹고 상당한 토큰을 쓰거든요. 그리고 브랜딩이란 본질적으로 고객과의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기에, 고객의 피드백 하에서 지속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그렇게 신경쓰이진 않습니다. 조금씩 시스템을 수정하면서 쌓고 있거든요.

방향성을 얹어놓은 비주얼 시스템 위에서는, 만들고 피드백 받고 다시 만드는 사이클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이 좋아질수록 우리가 글로 표현하는 것을 시각으로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미션에 공감하는 분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속력의 시대에서 정렬의 시대로. 여러분 기업의 벡터는 무엇인가요?

Make Capital 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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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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