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대처하는 4개의 투자자 플레이북
여러분은 어떤 답을 갖고 계신가요?
직접 만나 대화하고 싶습니다
2025년이 어느새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 낭만 넘치는 한 해 보내셨는지요? 많은 분들이 연말을 맞아 회고를 하고 있지만, 저는 요즘 회고보다는 앞으로 오게 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설렘과 두려움이 정확히 반 씩 차지하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왜 사는가?'로 시작되는 거창한 문장들을 노트에 적어보고 있습니다.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최근 낭투파를 통해 공유드리고 있는, 'AI가 촉발하는 격동의 시기, 투자자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입니다. 고민을 푸는 가장 좋은 방식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죠. 작년에는 약 400분을 오프라인에서 만났지만, 올해는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두고 있었네요. 2026년은 10명 이내의 작은 오프라인 밋업으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글을 보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링크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글 하단부에도 있습니다)
기업의 변화는 자본의 변화로
지난 번 전달드린 'AI 시대, VC의 유통기한'이라는 글을 통해 AI는 기업과 자본의 구조를 모두 바꿀 수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위 글을 간단히 세 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어떤 기술들은 생산 구조, 즉 기업의 생김새를 뜯어낼 정도의 변혁을 불러온다. 과거 산업혁명의 케이스를 보면 생산구조의 변경은 새로운 계급 분화를 암시하기도 한다.
- 철도와 철강으로 상징되는 2차 산업혁명은 주식회사와 투자은행 체제를 보편화시켰고, 월가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의 3차 산업혁명은 스타트업과 VC의 등장을 이끌었고, 일부 중력을 실리콘밸리로 당겨왔다.
- AI는 자명하게 생산구조를 바꾸고 있다. 선호되는 인재상부터, 기업구조, 업무구조, 자본구조 등이 연달아 바뀌고 있다. 새로운 생산구조는 새로운 자본가의 등장을 재촉한다.

'그래서 다음 세대의 투자자는 무엇이냐?'라는 거대한 질문에 대해 확답을 내리기는 다소 섯부른 감이 있지만, 최근에 제가 가장 감각있다고 생각하는 회사들은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토론의 토대를 쌓아보겠습니다.
1.프론티어 길드 : 괴짜들의 네트워크
이들은 AI 시대의 창업자상 및 인재상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새로운 기술의 진성 신도를 모집하고 그들 간의 교류와 충돌 사이에서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갑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사례는 South Park Commons(SPC)입니다. 2016년에 페이스북의 최초 여성 엔지니어이자 인도계 파운더인 루치 상비(Ruchi Sanghvi)가 창업한 SPC는 "최고의 아이디어는 혼자 고민할 때가 아니라, 자기만큼 똑똑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탐색할 때 나온다."라는 핵심철학 하에 운영되는 커뮤니티이자 투자사입니다. Anti-Incubator 모델을 천명하면서, 이미 아이디어가 있는 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개인을 모아 아이디어를 만드는 (그들 표현으로) '-1 to 0'를 같이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인도계 미국 테크업 종사자들의 커뮤니티를 발판 삼았지만, 훨씬 더 큰 범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Open AI나 Meta에서 튀어나오는 엔지니어들이 '다음은 뭘 할까' 고민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 중 하나이며, 현재 최고 수준의 AI 학자들이 같이 모여 논문을 쓰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름에서부터 보이듯 그들 스스로를 투자자라고 한정 짓고 있지는 않지만, 펀드를 운용하며 인큐베이터보다 앞에서 투자를 집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커뮤니티 중심의 방법론은 변화의 시기에 늘 작동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후반 소프트웨어 시기의 개막에 앞서 '해커' 창업자를 장악했던 Y Combinator가 있을 것입니다. YC도 최근 앵글을 AI로 강하게 틀고 있는데 SPC와 같은 신흥강자와의 대결에서 누가 주도권을 장악하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입니다. (참고로 SPC의 Anti-incubator 모델은 YC를 정면반박하는 형태입니다.)

[국내에서는?] 최근 가장 규모있게 조성되는 AI 프론티어를 위한 커뮤니티는 (투자사는 아니지만) 비팩토리 노정석 대표님과 이승준 님이 주도하는 '도망자 연합'인듯 합니다. 투자자의 앵글에서 조성되는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AI라는 거대한 물결 위에서 방향을 찾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SPC의 사례처럼 전통적 투자자의 의미가 붕괴하고 있는 시점이기에, 어떤 행보로 이어질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2.인프라 설계자 : 돈보다 귀한 것
조금 더 딱딱하고 무거운 영역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AI 시대의 인프라 설계자들은 마치 100여년 전의 JP 모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들은 현 시대의 AI 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리소스가 돈에서 '컴퓨팅 파워'로 넘어간 것을 주목하여 Compute-as-capital 모델을 제시합니다. 마치 JP 모건이 철도와 토지를 제공했던 것처럼 말이죠.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VC이자, post JP Morgan을 일찍이 주장해왔던 것을 알려진 a16z는 당연히도 이 플레이북을 가동시키고 있습니다. '산소(Oxygen)'이라는 프로그램이 상징하듯, AI 모델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에게는 필수재와 같지만, 돈이 있어도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구하기는 어려운 GPU 자원을 제공하면서 AI 스타트업들의 선택지로 기능합니다.
Github의 전 CEO 냇 프리드먼과 YC의 전 대표 대니얼 그로스가 2023년 설립한 NFDG 펀드는 $1.1Bn 규모로 결성되어 AI-native 팀은 소규모로 움직여야 한다는 thesis를 가장 주요하게 내세웠습니다. 그와 동시에 '안드로메다 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2,512개의 GPU를 구매하여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한 후에 포트폴리오 기업들에게 공급하였습니다. 인건비는 줄고, 컴퓨터 리소스 비용은 늘어나는 AI 시대 기업 구조 변화에 발맞춘 운용 모델입니다. 2025년 투자자산 가치가 평가가치 기준 4배까지 올라갔던 이 펀드는, 현재는 냇 프리드먼이 메타의 AI 수장으로 이동하면서 구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Index Ventures와 Lightspeed는 오라클과의 연합을 통해, Conviction은 Lambda와의 독점 파트너쉽을 통해 컴퓨팅 자원과 지분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Inception이라는 CVC 프로그램으로 독점적 네트워크를 직접 구성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국내에서는 직접 GPU를 구동시키며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GPU를 직접 제공하는 투자모델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접근일 수 있습니다. 다만, 장원준님의 '스타트업이 돈을 쓰는 곳이 바뀐다. 적자를 해자로 포장할 미래'에서 언급되었듯, 기업의 비용 구조 중 인건비가 토큰비용으로 대체되면서 그에 부합하는 인프라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는 Menlo Ventures가 Anthropic과 결성한 anthology 펀드입니다. 이들은 AI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anthropic의 최신 모델이나 연구 내용, 커뮤니티 등을 공유합니다. 전통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지원이 기업의 흥망성쇠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비교해보면 개인적으로는 차원이 다른 지원으로 여겨집니다.

현재 국내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시도는 Open AI 한국지사 개소와 맞물린 SBVA의 파트너쉽 확대입니다. 아직은 Menlo와 Anthropic의 사례만큼 구체적인 투자모델이 제안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한국 스타트업의 실정에 맞는 차별화된 투자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Open AI는 매쉬업벤처스와도 협약을 완료했습니다.

3.딥 오퍼레이터 : 골조를 바꾸는 자본가
이들은 인프라 설계자와 같이 기업의 구조가 변경됨에 주목하고, 기존 자본가 대비 훨씬 사업에 참여적인 역할을 자처합니다. 다만 딥 오퍼레이터는 인프라 설계자처럼 외연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보다 기업의 내재적 구조를 골조부터 뜯어고치는데에 집중합니다. 이들은 기존의 VC와 PE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a16z와 규모면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General Catalyst(GC)의 사례가 있습니다. a16z가 철도 인프라를 기반으로 성장한 JP 모건을 꿈꾼다면, GC는 트러스트 구조의 수직계열화로 정유산업을 지배한 록펠러를 꿈 꾸는 것 같습니다.

GC의 최근 주요 전략은 전통적 PE 기법인 롤업(동일하거나 유사한 산업군의 여러 소규모 기업들을 인수하고 통합하여 하나의 큰 기업으로 만드는 성장 전략)에서 차용한 AI Roll-up 입니다. 이 전략은 2023년 HATCo라는 헬스케어 전문 운영사를 직접 설립하며 시작되었습니다. HATCo는 이듬해부터 Summa Health라는 오하이오 주재의 2개 병원 캠퍼스, 15개 메디컬 센터를 포함한 헬스케어 시스템을 인수했습니다. 그리고는 각종 바이오/헬스케어 AI 서비스에 대한 적용의 최전선이자, 헬스케어 관련 포트폴리오가 PoC를 전개할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GC가 AI 롤업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3주 전 공개된 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GC는 15억 달러를 투입하여 전통적인 산업에 접근하여 AI Native 기업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콜센터, 주택관리 서비스, 아웃소싱 IT 서비스회사 등의 AI 전환을 진행 중인데 매출 증대와 EBITDA 2배 개선을 타겟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포춘 100대 기업의 AI 전환을 위한 컨설팅 비즈니스를 위해 Percepta 라는 기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GC와 아주 친한 관계를 갖고 있는 뉴욕 기반의 Thrive Capital 역시 오퍼레이터 중심 모델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습니다. 컴퍼니빌딩을 통해 기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본 경험과 2023년부터 Open AI 의 깐부로서 만들어온 파트너쉽이 결합되어 2025년 하반기 Open AI의 전략적 지분투자를 받은 형태로 Thrive Holdings를 설립하였습니다. Thrive Holdings에서는 대표적으로 Crete Professionals Alliance라는 법인을 설립하여 미국 전역의 20여개 중소형 회계법인을 인수통합하였습니다. 매출 규모는 3억달러 수준으로 단숨에 최대 규모 회계법인 중 하나가 되었고, 현재 Open AI의 엔지니어들이 데이터 매핑과 세무 업무 등을 AI로 효율화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은 딥오퍼레이터 분야의 선두주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굉장한 격전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효율화의 여지가 많은 전통 산업 및 기업 구조와 높은 AI 사용성의 접점에 놓인 기회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단위 자본을 기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Roll-up은 단기간 내에 구현되기 어려울지라도, 손에 흙 묻히기 좋아하는 신지훈 님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소규모 레거시 기업의 운영 효율화를 타겟으로 한 인수창업 형태는 단기간 내에 활발해질 수 있다고 보입니다.

인수창업 모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글 하단부의 오피스아워로 연락 주세요!
4.알고리즘 VC : Quant for all
AI 시대의 플레이북 중 하나는 알고리즘 VC 입니다. 이들은 투자대상 기업의 인재상이나 기업구조에 주목하는 것보다, AI가 이끌어내는 투자기업의 구조 변화에 더욱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럽 최대의 VC 중 하나인 스웨덴 기반의 EQT 파트너스는 Motherbrain이라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플랫폼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Motherbrain은 201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전 세계 5,000만 개 이상의 기업 데이터를 50개 이상의 소스(뉴스, 특허, 웹사이트 트래픽, 채용 정보 등)로부터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합니다.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들이 기업의 펀더멘털을 분석하기 위해 대안 데이터를 수집하는 논리와 유사합니다. 이들은 Motherbrain을 기반으로 '유니콘이 될 확률이 높은 회사'를 추출하여 딜소싱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맞는 접근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국내에서는?] 사실 이 분야에서는 더벤처스가 'AI 심사역 비키'라는 이름으로 보이고 있는 행보가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보더라도 눈에 띕니다. 더벤처스가 AI로 투자산업을 혁신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는 더벤처스 테크 리드이신 황성현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NFM live는 재정비 중에 있습니다. 커밍쑨..)
혼란의 시기, 어디로 가야 하나요?
AI가 변화시키는 기업 구조는 자연스럽게 자본 운용 방식의 재배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VC와 PE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은 가속화 되고, 돈 대신 다른 것을 투자하는 게 뉴노멀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위에서 소개드린 플레이북 중 일부는 시대적 시행착오로 소멸할 것이고, 범용적인 표준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방식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IB나 VC가 그랬던 것 처럼, 일부는 글로벌 표준이 되기도 하겠죠.
한국에서 현 시대를 지나치는 우리는 어떤 답을 내려야 할까요?
비슷한 고민을 갖고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0명 이내의 소규모로 밋업을 개최해보려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폼으로 신청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