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업은 복리 기계인가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400년 전 발명된 '기업'이다

당신의 기업은 복리 기계인가요?

테크 영역에서 기업 투자를 하는 일을 하던 저에게 요즘은 가장 도파민 터지는 시기입니다. 지난 글 <AI 시대, VC의 유통기한>에 적었던 것 처럼 '테크'라는 수단과 '기업'이라는 구조가 가장 격렬하게 결합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AI Native Enterprise'라는 키워드 하에 실험 및 관찰을 반복하고 있었는데요, 창업과 투자 사이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과정에서 느낀 AI Native 기업의 의미에 대해 찬찬히 적어보았습니다.

(짧은 홍보: AI Transformation Club을 열었습니다. 기업과 AI를 결합하고자 하는 분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AI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나 데미스 하사비스 같은 업계 프론티어들이 줄줄이 내놓는 공격적인 선언문과 우리 모두가 직접 느끼고 있는 AI 경험의 결합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라는 문장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치는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기회 혹은 위기를 맞닥뜨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지능에 대해

"곧 모든 화이트칼라 직종은 AI로 대체될거야"
"의사는 이제 AI로 대체될거야"

그런데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들은 조금 이상합니다. AI가 사람보다 똑똑해진다고 할지언정 AI가 갑자기 손들고 튀어나와서 사람의 직업을 대체하는 것은 아닐테지요. AI는 '인공 인간'이 아니라 '인공 지능'이니까요.

과도한 공포와 과도한 희망 사이에서 명확한 판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1) 누가 2) 무엇을 어떻게 바꿔 나가는지 하나씩 차근차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누가 대체하는가 : 인간이 발명한 가짜 인간 '기업'

사실 인류는 AI가 본격화 되기 400년도 더 전에 '인공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1602년 동인도회사에서 기원하는 '법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법적 용어로는 법인, 경제 용어로는 기업인 이 가짜 인간은 생겨난 이래로 끊임없이 인간을 대체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기업은 '자연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기업의 존재 의미는 (저만 그럴 수도 있지만)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대체 된다 vs 안된다'라는 논쟁은 의미없고, '무조건 인간의 한계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는 명제에 힘을 더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지언정,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AI 등장 이전에 기업이 기술과 구조를 활용하여 극복해 온 인간의 한계는 아래와 같습니다.

위험

아무리 그릇이 크고 용감한 사람이어도 자연인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초의 법인이자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자연인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배 한 척을 띄우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기업이라는 구조 없이 단순히 개인의 자금을 합쳐 배를 띄웠다면, 단 하나의 풍랑에 개인의 인생은 물론 가문이 패망할 수 있었다는 뜻이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권. 우리네 MTS에 들어있는 그 데이터 쪼가리와 같다.

최초의 기업은 타인자본에 주권을 부여하고 유한책임 개념을 통해 사람들이 더욱더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더욱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정유 제국을 건설한 록펠러와, 화성 가는 우주선을 만들겠다는 머스크의 꿈은 모두 시조 기업의 존재 목적과 궤를 같이 합니다.

시간

인간은 필멸합니다. 현재 인간의 최대 기대 수명 100년, 그 중 실제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약 50년은 때로는 위대한 꿈을 꾸기에는 턱 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멸의 인간인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법인 체제 하의 사람들은 시간적 제약 없이 거대한 사업계획을 그리고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LVMH의 창업자 베르나르 아르노는 장인의 직업적 수명이 다함과 동시에 운명을 달리하던 명품 하우스들을 세계적인 브랜드 기업으로 변모시켰습니다. 바로 자본과 산업 시스템화를 통한 방식이었죠. 그의 M&A 방식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기업이라는 체제를 통해 소멸하던 장인의 유산에 지속가능성을 더했다는 점은 자명해보입니다. LVMH는 불과 40년도 되지 않은 그룹이지만 LV의 루이비통은 1854년, H의 헤네시는 1765년 설립되었습니다.

1984년 아르노는 35세의 나이로 디올의 경영권을 인수하며 LVMH 그룹의 토대를 다졌다. 디올은 아르노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946년 설립된 럭셔리 하우스다.

공간/존재

인간은 하나의 순간에 하나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시스템을 통해 '몸이 100개였으면 좋겠어!'라고 외치는 기업가들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세기 초반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전문경영인과 중간관리자의 등장입니다. 주식회사 체제가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2차 산업혁명 시기 철도, 철강, 정유, 자동차와 같은 중공업을 다루는 과정에서였죠. 기업은 전문경영인을 만들어 주주 및 이사회의 이해관계를 대리하게 했고, 중간관리자를 만들어 다시 전문경영인을 대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 명의 의사결정은 순식간에 복제 및 분산되어 결과적으로 규모 있는 경제적 가치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부터는 제도적 변화를 넘어, 최신 기술을 기업 구조에 이식시키며 자연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증가했습니다. 인터넷, 서버, 네트워크, 모바일, 클라우드 등으로 상징되는 3차 산업혁명기의 기술들은 B2B Software라는 이름으로 설치형 혹은 SaaS의 형태로 기업체제 안에 공격적으로 이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기업이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기저로 기능했습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안타까울 수 있지만) 노동의 기록은 모두 디지털화되어 저장되었고, 언제나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국내와 달리 폭발적이었던 미국의 B2B SaaS 시장은 기업 내 디지털 데이터의 누적을 만들었고, 이는 AI 전환의 토대가 되고 있다.

2) 무엇을 어떻게 대체하는가 : 인간이 아니라 인간 지능의 한계

구조와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의 한계를 하나씩 극복해왔던 기업들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속성이 바로 '지능'입니다. 인간의 지능은 모든 기업이 가장 열렬히 추구했던 자원이자, 동시에 기업이 진정한 성장 머신으로 거듭나는 것을 방해하는 병목이기도 했습니다.

💡
지금 유독 AI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이유는, 인간의 많은 물리적 한계들은 이미 대체되었기에 현대 기업체의 지식노동자의 비중이 굉장히 높기 때문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OECD 국가 통계에 따르면 경영자부터 일반사무직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지식노동자 비중은 전체 노동자 중 약 60%에 육박합니다. 현재 선진국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지능을 무기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죠.

기업이 AI를 활용해 대체하려는 것은 정확히 표현하면 '인간 지능의 한계'입니다. 지금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지능은 어떤 한계가 있고, AI는 어떤 힌트를 제공하고 있는지 몇 가지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한계: 망각

인간은 망각합니다. 어제 아침에 읽은 아티클 내용과 지난 주 들은 대표님의 조언을 망각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 자신이 지난 분기에 했던 일조차 망각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록하고 정리해도 망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망각은 복리적 성장의 첫번째 걸림돌입니다. 저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복리적 성장을 삶의 자세로 삼으라는 조언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나?'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실험과 결과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앞으로 하는 모든 선택은 지난 실패와 성공의 교훈을 온전히 반영하는게 맞을까? 높은 확률로 아닐 것입니다.

기술은 기업의 기억이 잊히지 않게 도와주었습니다. 서버/클라우드와 데이터베이스의 발달은 기업의 데이터를 수집 및 축적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SaaS의 보편화는 기업의 일반적인 경영활동이 디지털 로그로 쌓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AI는 이 망각되지 않은 기억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AI는 어떻게?] 저는 최근 엔지니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클로드 코드(Claude Code)의 '스킬'을 대표적인 기억의 활용엔진이라고 정의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AI를 활용하여 업무를 잘 수행하고 나면, 그 프로세스를 '스킬'이라는 형태로 저장하여 언제든 같은 일을 할 때 고민하지 않고 꺼내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이를 통해 같은 단위 시간내에 점점 더 고도화 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컴파운딩이 가능해 진 것이죠.

예를 들어 낭투파에서도 1)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2) 시간을 줄이거나 성과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업무를 에이전트와 스킬로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성공 방정식과 실패 방정식이 모두 망각되지 않는 기억으로 남게 되는거죠.

두번째 한계 : 인지 범주

MECE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맥킨지, BCG와 같은 전략컨설팅 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 개념은 '서로 중첩되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이라는 의미 입니다. 전략의 영역에서 MECE가 중요한 이유는 중복과 누락없이 많은 변수를 고려하여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대학시절 전략 컨설팅 학회에서 처음으로 경영 관련 공부를 했다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변수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오만가지인 스타트업 바닥에서는 무시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 업계 종사자에게 'MECE는 인간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개념이기 때문에 굉장한 오만이다'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는데, 저도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상황을 검토하고 있을 바에 빠르게 실행하고 실패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AI는 어떻게?] 그런데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은 이런 복잡다단한 맥락을 모두 고려해서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간의 지능은 분명한 인지 범주의 한계를 갖습니다. 저는 병렬적 사고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하지만 경험적으로 7개가 넘는 맥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고 회로가 터지곤 합니다. 하지만 AI는 그 자체로 병렬형 엔진이기에 7개가 아니라, 17개, 70개의 맥락도 동시에 고려하여 최적의 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현재 시장에서 AI 활용은 체감상 70% 이상이 '초스피드 운영 자동화'에 집중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AI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전략/기획 영역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한계 : 집단 지성

많은 사람들이 AI 시대에는 1인 기업가가 득세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타당한 바가 있지만, 저는 여전히 다수의 팀원을 보유한 기업의 가치를 믿습니다. 1인 기업과 달리 집단적 복리 성장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AI가 없던 시대에서도 집단지성은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렇기에 삼성전자는 초정밀반도체를 만들고, 스페이스엑스는 우주비행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사회생활을 해보신 모두가 경험한 것처럼 인력의 증가는 늘 가치를 양의 방향으로 끌고 가지만은 않습니다. 경영학자 로널드 코스는 조직이 비대해질수록 정보전달 속도가 느려지기에 내부조직화 비용 증가로 기업의 성장이 멈출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AI는 어떻게?] AI는 인력의 수확체감 법칙을 수확체증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아키텍쳐를 AI native하게 바꿔놓으면, 옆 팀원의 노하우는 커뮤니케이션과 교육이 필요없이 즉각적으로 내 노하우가 되고, 옆 부서의 실험은 내 실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는 팀원들의 극단적인 신뢰와 투명성이 필요합니다. 개발자들이 오픈소스 생태계를 바탕으로 고속성장하는 것과 유사한 논리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이 완전한 AI 전환에 실패하는 가장 큰 병목이기도 합니다.

AI 스타트업이 적은 인원으로 큰 성과를 내는 것 뒤에는 단순히 '인간을 대체했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장곡선이 숨겨져 있다고 봅니다.

복리 기계(Compounder) : 가짜 인간의 오랜 꿈

AI native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요? 저는 AI 엔지니어가 많은 기업도, AI를 활용한 프로덕트를 잘 만드는 기업도, AI 툴을 많이 결제하는 기업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AI native 기업은 Gemini Pro 계정을 결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1) 기업의 모든 실패와 성공을 내일의 밑거름으로 쓰일 수 있도록 저장하고, 2) 한 사람의 성장이 전체의 성장이 되도록 하며, 3) 인력의 증가가 가치의 체증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되고 있습니다. AI native 기업은 진정한 의미의 복리 기계(Compounder)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복리 기계가 되기 위한 AI 전환은 인간 지능의 한계에서 병목을 느끼는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재 AX로 일컫어지는 AI 전환은 '디지털 프로덕트 운영 자동화'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복잡다단한 기계에서 인간의 지능 한계에 의존적인 부분은 잠깐만 생각해봐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복리기계가 맞나요?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지능의 영역을 AI에게 내준 우리는 어떻게 이 시대를 맞이해야 할까요?


[AI 전환에 관심있는 분들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AI 미디어 기업 Every의 대표 Dan Shipper는 'AI 도입률 90%와 100%는 10배의 성과차이를 낸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극적인 숫자들로 꾸려진 말일지언정, AI Native Enterprise를 지향하며 회사의 모습을 그리다보니 그 의미는 깊게 와닿습니다.

요즘 AX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디지털 프로덕트 운영/개발 자동화'는 중요한 영역이지만 결코 기업활동의 100%는 아닙니다. EBITDA 상승, 매출 상승, 그리고 기업가치 상승에 압도적으로 집중하여 기업의 AI 전환을 같이 논의할 분을 찾습니다. 제 경험을 공유드리고 같이 충돌하며 compounding 하고 싶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AX Research Club - AI Transformation | Delta Society | Delta Society
기업 경영에 AI를 활용하는 AX(AI Transformation) 전략을 공유하는 AX Research Club에 지원하세요.

Build your own, Bloom together

Contact : team@romanceip.xyz
Linkedin : https://www.linkedin.com/in/sungjoongkim/
김낭만
Powered by Banana Farm